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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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사고로 딸을 잃은 작가인 '나'는 그 괴로움으로 부모와 뜸하게 지내다 엄마의 입원으로
J시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된다.

아버지의 잦은 눈물,
밤이 되면 깨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거나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6남매중 넷째딸인 '나'는
큰오빠와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와
잊고 있었던 기억의 단편들을 통해,
엄마와 오빠들,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아닌 한 인간,소년이었고
청년이었으며 농사를 짓는 6남매의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깊은 사랑또한
마주하게 된다.


나는 아버지를 한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때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아버지 개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p.196)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의 소년시절과 사진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청년시절,그리고 내 어릴적 기억에 남아있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꿈과 희망,좌절과 슬픔의 이야기들을 소설속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나또한 알고 싶고 듣고 싶어졌다.



내가 평소에 나의 아버지에게서,보통 아버지라고 할 때 으레 따라붙는 가부장적인 억압을 느끼지 않고 엄마보다 아버지를 다정히 여기며 살아온 것은 아버지의 내면에 도사린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무섭고 두려운게 많았던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과 대적해왔다는 것도.(p.196)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무겁군.
이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막막하여 이렇게 쓰고 있지만 너의 대답을 듣고자 함은 아니다.
남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 아닌가.
(p.392 큰 오빠의 편지중에서)


'무섭고 두려운 것이 많았던 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내 곁의 남편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년에서 꿈많은 청년을 지나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로 살아온 삶.
이제는 삶을 하나씩 정리하기 위해 6남매와 아내에게 유언을 받아적게 하는 소설속의 아버지는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자라온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추억들과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을 시간이 지나 후회하지 않도록 아버지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들어드리고 싶다.
늘 도움과 사랑만 받던 나도 언젠가 나아버지곁을 챙겨드려야 할 날이 오리라는걸 두려움없이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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