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안녕하니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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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이 허풍에 가득 찬 말처럼 들렸었다.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자랑, 허세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른들이 하는 말이 참 재미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지혜가 있다.(물론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어른들도 여전히 많은데 그들 역시 반면교사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제 사회초년생인 친구가 고민 상담을 해왔다. 자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겉도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말했다. 그건 너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의외로 다른 사람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너를 돌보지 않으니 오히려 그곳에 속하지 못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겠냐고. 그러니 사람들에게 한발 먼저 다가가 보라고 말이다.

 

어떻게 하면 그 친구를 도와줄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도 적당한 답이 나오지 않아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물어보았다. 상사가 말했다. 겉도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타당한지 아닌지는 그 친구가 결정할 일이라고. 그것이 정말 착각이었더라도 친구가 직접 경험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편을 들어주는 일뿐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전화한 이유는 회사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어딘가에는 자기편이 있다는 믿음을 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도움을 주겠다고 내뱉은 말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말이었는지! 얼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내 말이 틀렸다고 사과했다.

 

넌 안녕하니1931년생 저자가 2000년에 쓴 책이다. 자신이 인생을 살며 느낀 점들을 자랑이나 허세 없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강요 없이 다정하게 전한다. 그런 저자의 목소리 때문인지 문장 안에 담긴 지혜가 오히려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넌 안녕하니라는 제목에도 저자의 다정함이 묻어난다. 정말 하루하루 목숨을 지켜 내는 것만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요즘, ‘넌 안녕하니라는 저자의 안부 인사가 간신히 억누르고 눈물을 치솟게 만든다. 간혹 마음이 너무 힘들 때 밥은 먹었냐는 엄마의 질문에 눈물을 왈칵 쏟듯 말이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는 처음 읽어보았는데 왜 이 저자의 책이 끊임없이 나오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참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페이스와 목표를 잃지 않는 것이다. - P29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하면 그 일을 하는 내내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 일을 어떤 식으로 해야 편할지 즐거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아서 하는 사람만이 그 일에 안정되고, 뭐랄까, 그 일로 얻는 보수 등과는 상관없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 P35

이 시대의 경박함과 슬픔은 ‘자각이 없다’는 점에 있다. 인간다움이란 도덕적으로 자각함을 의미할 터인데…. - P41

속박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세상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내 책임의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실패했을 때는 움츠리고 ‘사람이니까 이럴 수도 있지’하며 스스로를 타이른다.

결국 나는 세상과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 P43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정상이 있다. - P45

자연스레 되어가는 대로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열쇠다’ - P50

나는 늘 나의 장래를 어느 정도는 계획하고 다소 노력함으로써 방향을 결정지으려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어떤가. 그들은 나의 조급함이나 불안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코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열매 맺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기다렸다. 그것이 대자연의 순리일 것이다. - P53

자신의 불행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모두 몸 어딘가가 안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자신도 평소에는 그다지 신경질적이지 않지만 몸 상태가 조금 나빠지기라도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화가 나고 ‘정말, 나는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하며 낙심하기도 한다. 바보 같은 얘기지만 재능이란 하루 아침에 없어지거나 생기는 것도 아닌데, - P57

외부적인 자극으로 하나하나 변한다고 주장한다면 나 자신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P61

타인은 얼마나 나 자신을 키워주는 존재인가,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조금도 완성할 수 없다. - P66

상대에게 용서를 빌게 할 정도라면 그냥 뒤에서 몰래 모멸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 P69

다른 사람의 영역에 들어가면 자기 주장을 하지 말고 그 사람의 방식에 따르라는 말이다. - P85

가끔은 대충 넘겨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 P90

인간 사회란 오묘하여 옛날에 몹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 존재를 원망했던 사람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나를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음을 알게 될 때도 있다. - P91

상대가 일을 그르치게 하려거든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모든 싸움이나 투쟁이 다 그렇다. 화가 나면 인간은 영락없이 허점을 보인다. - P92

실은 처음엔 실패가 두려웠지만 여러 번 실패하다보니 사방팔방에 틈이 생겨 의외로 통풍도 잘 되고 쾌적하다! - P112

사람이란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사람의 수만큼 현명해진다. - P130

고난과 안일이 번갈아 나타나고 그 변화를 즐기면서 지치면 쉬고, 쉬고 나서는 다시 싸워보는, 그러한 기복을 맛보는 심경이 되어야 할 것 같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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