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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잘 팔리는 책들의 비밀
한승혜 지음 / 바틀비 / 2020년 7월
평점 :
나는 글재주가 없다. 우리 오빠는 학창시절 글쓰기 대회를 나가 상을 받아오곤 했는데, 그런 오빠의 글을 읽으며 아, 나는 글을 정말 못 쓰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번역가가 되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점이 줄곧 마음에 걸렸었다. 그러나 번역은 원문을 한국어로 옮겨 쓰는 것이니 언어 공부만 착실히 하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었다! 바로 ‘옮긴이의 말’. 번역이 된 책 가장 뒷부분에 옮긴이의 서평이 실리는 것이다. 그제서야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 가 고민을 시작했다. 늘 독후감 형식으로 느낌만 간단히 남겨왔었는데 서평이라니! 찾아보니 서평은 ‘책을 읽게 된 배경 > 작가 소개 > 책 소개 > 추천 이유·대상’ 순으로 쓰면 된다더라. 그래서 내 모든 서평은 이러한 순서를 걸친 형식적인 글이 됐다. 단조롭고 재미없는 내 글을 보며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읽어봐야 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는 서평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다. 책을 읽어보고 싶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될지 몰라 베스트셀러만 뒤적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베스트셀러는 진짜 책이 아니라며 베스트셀러를 읽는 독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만일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베스트셀러를 읽는 독자가 아니라 베스트셀러여야 한다고 말하며, 베스트셀러를 직접 읽고 베스트셀러로서의 가치가 있는 책인지 아닌지 주관적 의견을 표한다. 시중에 나온 베스트셀러를 몇 권 접해본 사람이라면 목차에 있는 책 목록을 보고 ‘어, 나도 이 책 봤는데!’하며 펼쳐보게 될 것이다.
〈서울신문〉,〈오마이뉴스〉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는 한승혜 작가의 글은 이런 경력을 고스란히 드러내 듯 논리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책, 드라마, 영화를 통틀어 최근에 무언가를 이렇게 깔깔대며 본 적이 있던가? 《미 비포 유》 서평은 정말... 어쩜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신데렐라’ 로맨스 소설을 비평하는지. 서평을 쓰려다 보면 책을 냅다 비판하고 싶어도 작가의 노고나, 같은 책을 읽고 좋게 평가를 한 다른 독자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땐 좋다말다 평가를 하지 않고 말을 줄이는 방법을 썼다. 그런데 저자가 쓴 《신경쓰기의 기술》 서평은 신랄하기 그지 없었다. 비판을 하냐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근거로 비판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서평을 쓰는 이유는 예비 독자가 책을 고를 이유 혹은 고르지 않을 이유를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쓴 서평의 놀라운 점은 결말을 다 스포하기도 하고, 뻔한 내용이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독자에게 선택권을 넘겨주는 서평인 것이다.
저자의 서평을 읽으며 나는 언제쯤 이런 서평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벌써부터 할 필요도 없는 걱정을 했다. 이에 답하듯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초보였다” 그게 어디 독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분야가 무엇이든 누구나 처음에는 초보인 것을. 서평, 독서법, 재미까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인 사람, 잘 쓴 서평이란 무엇인가 궁금 한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런데 수많은 지식인 및 출판 관계자들은 베스트셀러를 아예 책으로도 취급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를 구매하는 독자는 독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휴, 저런 책이나 읽다니, 이것 참 큰일이로다! 하고 통탄하고 끝날 뿐이다. 만약 정말로 어떤 책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책이 어째서 문제인지, 무엇 때문에 그러한지를 설명해야 독자들도 납득할 것 아닌가. 덮어놓고 읽지 말라고 일갈하거나 베스트셀러 독자들을 싸잡아 무시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인식, 책이란 신성하고 고상한 것이라는 인식을 부추길 뿐이며 고로 출판시장의 양극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행위가 될 뿐이다. - P19
결국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자신에게 무슨 책이 잘 맞는지, 자신의 취향이 어떤지를 파악하려면 많이 읽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 위주로,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말이다. 다만 조금 더 흥미를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항상 문은 살짝 열어둔 채로.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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