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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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작지만 알찬 내용에 반해 그 자리에서 산 책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책이었다.


김정선 작가는 20년 넘게 다른 사람의 문장을 다듬어 온 교정·교열 전문가이다. 많은 출판사에서 일을 했고, 그 경험과 교정·교열 기술로 《동사의 맛》《소설의 첫 문장》 등의 책을 냈다. 앞서 말한 두 책과《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모두 유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렇듯 유유 출판사는 ‘우리말’과 ‘책’을 다루는 도서를 다수 발간했다. 나는 그 중 이강룡 작가가 쓴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를 읽었는데,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일 만큼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가 번역 요령을 다룬다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우리말에 스며든 ‘번역투’를 꼬집는다. 이 번역투만 바로 잡아도 군더더기 없고 자연스러운 한국말이 된다는 것이다. ‘사과 세 개’라고 하면 될 것을 ‘세 개의 사과’라고 한다든지, ‘환경 문제’를 ‘환경적 문제’, ‘수많은 경험’을 ‘수많은 경험들’로 쓰는 등 번역투라고 익히 알고 있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임에 틀림없다’, ‘-같은 경우’처럼 우리말에 깊게 스며들어 번역투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표현이 있다. 번역투를 습관처럼 쓰는 이유는 문장을 풀어쓰지 않아도 되며, 다양한 어휘를 쓰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선 작가는 이 번역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업무 보고서나 논문처럼 전문가같이 글을 쓰고자 할 때 특히 이런 번역투가 문장을 뒤덮는다. 아래는 회사 보고서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고유치 해석결과 방향별 유효 질량 참여율의 합이 90%를 상회함을 확인하여 본 해석이 교량의 동적거동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띄어쓰기는 차치하더라도 동사를 계속해서 명사화하여, 간결하고 적확해야 할 보고서가 정신없게만 느껴진다. 아래처럼 바꾸면 어떨까?

고유치 해석 결과, 방향별 유효 질량 참여율 합이 90%를 넘으므로 본 해석은 교량의 동적 거동을 충분히 구현한다.


나처럼 보고서를 볼 때 보고서 내용보다 엉망진창인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자기 자리를 잃은 안쓰러운 문장 요소들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후 다시 마주한 보고서는 더욱 참혹할 수도...)작고 얇은 책일뿐더러 중간중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작가의 경험담도 있으니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엔 편집자들이 ‘-들‘을 반복해서 쓴 원고를 ‘재봉틀 원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들들들들‘만 눈에 띄니 마치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 P27

삶은 엉덩이다, 알겠느냐? - P37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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