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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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미미 여사님의 작품인데 이번 작품은 많이 약하다. 미미 여사님의 작품은 크게 두 갈래 사회파 미스터리와 에도시대물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파 미스터리에선 [화차], [이유] 등 걸출한 대작에 온 에너지를 이미 다 쏟으셨나 보다. 에도시대물은 쭉 괜찮은데 현대물에선 기력이 다하신 건가...


다단계 사업, 사람을 홀리고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피라미드 조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야기가 너무 늘어진다. 적어도 1/3은 들어내도 될 거 같다. 말이 많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긴장감이 떨어지다 보니 미스터리 특유의 재미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 미미 여사님이 악인이든 선인이든 사람 자체에 관심이 많은 건 알지만 사건의 전반적인 배경이나 흐름에 따뜻한 시선을 담아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에 강점이 있으시지, 심리묘사나 직접적인 설명을 통해 인간을 드러내려고 하는 타입이 아니기에 이런 늘어지는 말말말... 들은 작품을 깎아먹는다.


최고의 킬러는 총알을 낭비하지 않는다. 단 한방으로 급소를 뚫는 법이다.

아, 손목 아파... 들고 보느라 욕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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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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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는 가사부(우리나라로 치면 가정법원쯤) 판사이다. 이혼 소송이나 아동학대, 양육권 분쟁 등을 담당하며, 그 능력 또한 인정받고 있는 59세의 판사다. 남편의 어처구니 없이 당당하고 뻔뻔한 외도 선언에(결혼은 깨지 않고 바람을 피우겠다는, 죽기 전에 열정적인 관계를 가져보고 싶다는 바램으로) 피오나는 절망한다. 빠르고 현명하며 냉정하되 합리적인 결정을 수시로 내리고 납득시켜야 하는 일상 속에서 피오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깨지도, 차분히 돌아보지도 못 한다. 그 와중에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백혈병 환자 '애덤' 사건을 맡게 된다.


낮 동안 피오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고 밤이 되면 남편과의 관계에 괴로워한다.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삶을 택한 그녀에게 이런 위기와 변화는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이성과 논리, 법과 판례로 설명하고 정의할 수 없는 문제들,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고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드는 문제 말이다. 피오나는 애덤을 만나 종교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믿음과 음악, 시에 대한 순수한 열정 등을 보고 위로받는다. 그러나 항상 냉철한 이성을 빛내고 쟁점들을 두루 살피어 짚어낸 문장으로 훌륭한 판결문을 작성해 오던 피오나는 갑작스레 닥친 혼란으로 인해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서도 그랬지만, 한 번의 말실수, 순간적인 판단 미스로 인한 행동의 결과가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걸 일개 개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는 법이다. 최초의 의도나 당시의 상황,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드는 심경 변화, 반성과 후회 따위와는 상관없이 한번 사람의 손을 벗어난 것은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고, 이언 매큐언은 그런 비극에 정통한 작가이다. 안타까운 건 항상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은 한 번의 실수에 이토록 크게 고통받게 되는데, 잭 같은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도 큰 여파가 남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아온 부부만의 신뢰와 애정이 순간적인 열정과 쾌락에 밀려 내동댕이 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잭은 그걸 입에 담고 가방을 챙겨 피오나를 떠난다. 결국 후회하며 되돌아온 잭에게 피오나는 아무 말없이 새로 바꾼 현관 열쇠를 준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린 커피를 잭은 그녀 쪽으로 슬쩍 밀어준다.  뭐냐고, 이 불합리한 인생은...


애덤과 피오나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대목에 예이츠의 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의 두 번째 연이 등장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번역보다, 이 책에서의 번역이 더 좋더라. 그래 봤자 단어 몇 개 다른 것뿐이지만, 시의 경우엔 유독 큰 차이로 다가온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흥미진진하게 홀딱 빠져들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언 맥큐언이 아동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몸짓 하나, 서투른 행동 등을 통해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관계...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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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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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별로다. 말이란 상대에게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간단,명료,심플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복잡한 단어나 스펠링을 짐작하기 어려운 외래어 따위 남발하지 않는, 편안한 일상의 언어로 울림을 주는 그런 글이 좋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시보단 산문이, 소설이 좋아졌다. 주입식 교육의 폐혜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미 죽고 없는 작가에게 확인도 받지 않고 사람들 멋대로 몇 단어 되지도 않는 글에서 이게 무슨 상징이고 중의적 의미가 어쩌고 하는 게 싫어서 시를 더 멀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시가 분명히 존재한다. 명작이란 그래서 위대한 것이 아닐까. 어떤 편견과 선입견, 외국의 언어, 문장의 길이나 소재 따위와 상관없이 바로 마음을 건드리는 힘, 그것을 가지고 있다. [중쇄를 찍자!]는 책 자체도 좋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시 한편으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 되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결코 화내지 아니하며

늘 조용히 웃으며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 숲속 그늘에 지붕을 새로 이은

작은 오두막에서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계시면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두라고 말리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위 닥친 여름에는 어찌할 바 몰라 허둥거리고

모든 사람에게 바보 소리를 들으며

칭찬도 듣지 않지만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고

나는 되고 싶다


- 미야자와 겐지 -



" 그저 글씨가 늘어서 있을 뿐인데

  어째서 나는 우는 걸까.

  어째서 가슴에 스며드는 걸까."


저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린 사람은 주인공이 입사한 출판사의 사장이다. 그의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 내가 관여한 서적은 전부 히트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책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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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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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자와 호노부의 책은 다소 묘한 섬뜩함과 기분나쁜 여운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이긴 한데 소재나 내용에 따라 약간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이번 책은 6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작가의 색을 제일 잘 보여준 것은 '석류'라고 생각하지만 근친상간류의 막장 스타일은 내 취향이 아니고, '사인숙'과 '만원'은 고만고만했으며, '문지기'는 전설의 고향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를 보는 듯 했다. 표제작인 '야경'과 '만등'은 좀 실망스러웠다. 작가가 의도한 것만큼의 서늘함은 결코 나오지 않더라. 전체적으로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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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의 해 - 내 인생을 구한 걸작 50권 (그리고 그저 그런 2권)
앤디 밀러 지음, 신소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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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전공자인 작가가 남들에겐 읽었다고 말하고 다니던 책 50권을 실제로 읽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보통 이런 류의 책에 관한 책에 등장하는 독서 리스트는 메모하여 따로 저장해두고 나도 읽어봐야지 하게 마련인데 이번 경우는 예외다. 처음 들어보는 책들도 있고 당췌 엄두가 안나는 책들이 태반이다. 결코 쉽다 할 수 없는 책들을 연이어 다 읽어낸 작가를 대견하게 여기게 될 뿐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것이 두가지 있었다. 인생을 구한 50권은 그렇다 치고 그저 그런 두권의 책이 뭘까 싶었고, 또 하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훌륭하고도 무사히 잘 마쳤는데 뭐가 위험한 독서의 해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웬걸, 작가는 그 책들을 다 읽고 난 후 회사를 때려치우고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섰다. 아, 이래서 위험한 해란 얘기구나... 하고 공감을 크게 했더랬다. 인생을 구한 50권이란 것은 출퇴근 전쟁에서 벗어나 인세 생활자가 된 것을 의미한 거였나, 역시 깨달은 자는 행동도 과감하다. 비루한 월급생활자인 나는 그 50권들을 모른 척 하는 걸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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