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쯤 부족한 듯... [흑사의 섬]

흑사의 섬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6월

[줄거리-알라딘 책소개 중 발췌

조사 사무소를 운영 중인 시키부는 고객인 작가 카츠라기 시호가 행방불명되자 그녀의 행적을 쫓아 카츠라기의 고향 야차도로 향한다. 외지인을 배척하는 외딴섬 야차도. 마을 안에 숨은 불온한 분위기를 느낀 시키부는 결국 카츠라기가 처참히 살해당했단 사실을 알아내지만, 마을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입을 다물며 비밀을 파헤치려는 시키부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려 한다.
섬을 지배하는 흑사의 신앙 아래 숨은 광기어린 살인범과 이를 추적하는 시키부, 그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카츠라기의 과거와 섬의 오랜 비밀은 하나의 진실을 향해가는데… ]

미쓰다 신조나 요코미조 세이시 풍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질만 하겠다. 폐쇄적인 외딴섬, 특히 높은 파도와 태풍으로 가로막힌 섬, 외지인을 무척 꺼리는 섬 사람들, 국가신도로 통합되지 못한 흑사의 존재와 위엄이 지배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진료 집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공간...야차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마두신의 존재와 섬사람들의 믿음, 진료 가문의 존재, 기괴한 살인 등에 관한 부분은 미쓰다 신조풍에 가깝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처럼 약간 외부에서 바라보는 듯한 냉정하고 침착한 분위기가 있다. 섬이나 진료 가문, 신앙에 관한 전설과 지벌 등에 관한 부분에서는 미쓰다 신조의 기괴하고 사위스러운 분위기 조성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마쓰다 신조의 작품에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나 그 곳의 전설, 마을 분위기 등에 등장인물 모두가 휩쓸려가는 듯 하다면 "흑사의 섬"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카츠라기 시호를 찾으려 하는 시키부는 꽤나 냉정한 제 3자의 시선을 갖고 있으며 마치 독자가 책을 보며 같이 조사에 참여하는 것 같은 품새이다. 그런 면에선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에 가까운가 싶겠지만 시키부의 경우 늘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긴다이치 고스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굳이 미쓰다 신조나 요코미조 세이시의 스타일과 비교를 한 것은 "흑사의 섬"이 뭔가 조금씩 모자란 듯한 부분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섬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연달아 덮어버린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마두님에 관한 부분과 진료 가문에서 마두님을 달래고 지키는 슈고에 관한 내용이 너무 부족하다. 사고인지 타살인지, 자살인지 살인사건인지도 모르는, 모든 것이 모호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마두님의 뜻으로 생각한다? 과거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짝 지을 수 있는 한 쌍의 사건이 일어나면 이것 역시 마두님의 뜻으로 치부하고 벌 받을 사람이 벌 받은 것으로 여기고 넘어가는 섬마을 사람들의 절대적인 믿음을 설명할 근거가 아예 등장하질 않는다. 애초에 마두님과 진료가문의 존재 설화(?) 부분의 설득력도 낮은데도 불구하고 마두, 해치, 슈고에 관한 이야기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진료 가문 당주들의 난잡한 여자 관계나 마두님이 내리는 벌의 상징이라는 화살의 등장 시점도 맞지 않는 사건들을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행동들에 관해 납득하려면 과거에 좀 더 직접적인 사건이나 내력들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에도 미심쩍은 사건들만 존재하는데 이번에도 또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을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내게는 너무 억지스러워 보였다. 과거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와 현재 사건이 벌어지게 되기까지의 내막들에 관한 설명과 묘사도 좀 더 자세했다면 결말 부분에서 좀 더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여긴 그런 곳이예요, 원래 그런 사람들이예요, 이러나 저러나 결과는 같아요, 당신이라면 뭘 어쩌겠어요... 라고 마무리 짓지 말고 말이다. 이건 그냥 닥치고 토 달지 말고 내말 들어...라는 식이지 않은가... 좀 더 길게, 차근차근 풀어냈다면 훨씬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적극 추천합니다~ [사악한 늑대]

사악한 늑대 ㅣ 스토리콜렉터 16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3년 6월

[줄거리-알라딘 책소개 중 발췌

크리스토프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피아, 그리고 몇 가지 개인적인 불행을 정리하면서 인간으로서 한층 성숙해진 보덴슈타인. 두 사람은 이제 단순한 동료라기보다는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서로의 마음을 아는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모처럼 친구들과의 동창 모임으로 마음이 들떠 있던 피아는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는다. 마인 강에서 익사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강을 지나는 배의 스크루 때문에 이미 처참하게 훼손된 소녀의 시체에는 생전 받았던 끔찍한 학대의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지문으로도 치아로도 신원을 밝혀낼 수 없는 소녀의 시체 때문에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언론의 힘을 ... ]

넬레 노이하우스를 단지 독일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라고 하기엔 너무 거물이 되어버렸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독일계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들이 줄줄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에 미치지는 못 하는 것 같다. 시리즈 중 "깊은 상처"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것을 넘어설 작품이 나왔으니 바로 이번 "사악한 늑대" 되겠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대부분의 진행이 비슷하다. 사건이 일어나서 조사하고 추격하다 범인과 배후, 동기 등을 밝혀내는 과정이 큰 줄기라서 그 사이사이에 들어갈 크고 작은 소재와 에피소드들이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좌우하기 마련이다. 물론 거기에 주인공의 매력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다만 이런 미스터리 스릴러가 여러 나라, 여러 작가의 손에서 탄생하기에 다양한 분위기와 조금씩 다른 재미가 존재하겠지만 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쉬 쏟아져 나오는 작품들 속에서 튀기 위해 많은 작가들이 노력하겠지만, 넬레 노이하우스 작가의 경우 소재에서 차별화를 이끌어 내려는 듯 하다.

내가 "깊은 상처"를 높이 치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가 독일에서 제 2차대전과 유대인에 관한 소재를 들고 나와 이런 작품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민감할 수 있는 소재로 이만큼의 재미를 보장하고 많은 사람의 공감과 애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로서의 선을 잘 지키며 적당한 줄다리기를 했던 결과라고 본다. 너무 극적인 소재로 재미와 완성도를 선 보인 터라 개인적으로 이후의 작품인 "바람을 뿌리는 자" 같은 경우 되려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악한 늑대"는 아동성범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양을 꼬드겨 잡아먹었던 나쁜 늑대 이야기에 비유한 제목과 삽화가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작품의 주제를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하나같이 나쁘고 마땅히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 중 아동성범죄만큼은 정말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기다리던 작가의 작품을 손에 집어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작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의 단계를 넘어 사회고발소설인 듯 진지하고 묵직하게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의 문장력이나 작품의 흡인력 등은 기존의 작품들로 이미 증명을 했으니 더 말할 것이 없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아동성범죄를 단지 소설의 소재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며 다루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만 특히 버려지고 소외된 아이들의 존재와 가치, 존엄을 우리 모두가 깨닫고 함께 지켜주어야 할 것으로 인식시키려 한다. 계몽소설이 아닌 미스터리 스릴러이기에 작가는 크리스토프의 손녀 릴리를 통해 우리에게 대신 메시지를 전하려 한 시도 역시 마음에 들었다. 아,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은 책이다.

음... 쓸데없는 얘기 하나 추가

작가는 이 시리즈가 지금처럼 계속 될 것을 예상치 못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1권에서였던가 타우누스가 작은 시골이라고 피아가 언급했던 것 같은데... 이런 작은 지역에는 강력 사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어쩜 이리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지는지... 게다가 독일 뿐 아니라 유럽쪽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물들도 많고... 또 일어나는 사건마다 피아나 보덴슈타인의 가까운 지인들이 얽혀들어간다. 이건 좀 어색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시리즈가 계속 나오길 바라니깐 이런 건 살짝 눈 감아줘야하나??? ^^;

설렁설렁 가볍게 읽기에 좋음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줄거리-알라딘 책소개 중 발췌

가뜩이나 오지인 데다가 주변과의 왕래가 드물어 사투리조차 외국어 수준인 '우시아나' 마을에 남은 청년들은 고작해야 여덟 명.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고향 마을을 온몸으로 걱정하는 마을 청년회가, 뜨거운 열정으로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청년회에서는 없는 돈 털어 536만 엔이라는 거금을 마련하지만, 시골 중의 시골인 그들의 벽촌엔 내세울 만한 명물이 아무것도 없다. 이 절체절명의 과제에 도산 직전의 삼류 광고사가 눈앞의 돈만 보고 달라붙는다. 엉뚱하고도 우직한 시골 사람들과 영악하지만 인간적인 광고인들이 펼치는 유쾌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 작품은 가볍고 편하게 설렁설렁 읽기에 딱 좋은 내용으로, 굳이 열심히 읽으려 들거나 좋은 문장을 찾아 밑줄을 그으려 하거나 뭔가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며 볼 생각은 접어두는 편이 낫다. 내가 좋아하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풍에서는 살짝 벗어난 감은 있지만 허무하거나 실망스러운 가벼움은 아니다. 그냥 더운 여름날 어딘가에 기댄 채로 뒤적뒤적 책장을 넘길 때 딱 어울리는 책이다.

미래는 바꿀 수 있는 것인가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책소개-알라딘에서 발췌

미래에 찾아올 비극을 꿰뚫어보는 예지 능력자 케이시. 그는 미래를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는 조언을, 불행을 앞둔 사람에게는 경고를 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려 한다. 하지만 미래를 바꾸려는 케이시와 주변인들에게 숙명이 가진 무게는 가공할 전율로 다가오는데… ]

케이시는 예지 능력이 있다. 무심코 마주친 얼굴에서 곧 다가올 불행을 보게 되면 당사자에게 경고를 하고 도움을 주어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 책에는 케이시가 예지를 하게 됨으로써 영향을 미치게 된 사람들에 관한 6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초능력이라 하는, 미스터리계에서는 언뜻 반칙스러운 능력을 가진 케이시는 예정된 미래를 바꾸어 가능하면 사람들이 불행한 일을 겪지 않도록 애쓰는 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무일도 일어나지않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최고의 행복이라 여긴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여러 작품에서 숙명적으로 다가온 고난이나 피할 수 없는 불행한 사태에 관해 맞서거나 좌절하거나 혹은 극복하거나 순응하거나 하는 등의 인간의 태도와 의지에 관해 하고픈 말이 많은 작가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거나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로 넘어서려해도 사람인 이상 가질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감정과 그에 따른 행동, 고뇌 등을 통해 무언가 전달하고자 하는 까닭에 그의 작품은 미스터리소설임에도 꽤나 인간미가 느껴지는 편이고 남다른 긴장감과 속도감, 재미를 갖추게 되며 같은 장르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듯 하다. 단편모음집인데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제노사이드'식의 재미와는 확연히 구분되지만, 책 두께에 비해 굉장히 빨리 읽히는 편이고 기본 이상의 재미 역시 보장할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얼굴들 [퍼레이드]

퍼레이드 ㅣ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책소개-알라딘에서 발췌

제127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요시다 슈이치의 첫 장편소설. 방 둘에 거실 하나짜리 아파트에서 우연히 함께 살게 된 다섯 남녀의 일상을 경쾌하면서도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 보인다. 다섯 명의 동거인들이 차례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성이다.

다섯 명의 동거인들은 겉으로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친하게 지내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을 '당장 내일 헤어져도 섭섭하지 않을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 남이 바라는 모습을 연출하며 최대한 원만한 관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한집에서 동거 중인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 그리고 소년 하나.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한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지만 어느날 갑자기 누구 하나가 사라져버려도 아쉬워 할 것 없는 그런 관계다. 자신의 생활과 동거 생활을 적절히 나누어 놓고 적당히 좋은 얼굴을 하며 고만고만하게 지낸다. 누구나 집안에서의 얼굴, 직장에서의 얼굴, 친구나 동료들 사이에서의 얼굴, 연인사이에서의 얼굴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고 소속된 단체나 어울려야 할 모임 등이 늘어갈수록 다양한 모습을 취하게 된다. 떄론 그게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숨통을 조여올 수도 있다. 5명의 청춘남녀(?)가 한집에 동거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태라 하여 가볍고 즐거운 청춘소설로만 단정짓기엔 마지막의 반전이 너무 충격적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다 그런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