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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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원작이 있을 경우, 무조건 원작을 먼저 읽는다는 주의다. 책을 읽을 때는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반영되어 나 자신만의 비주얼과 이미지를 떠올리며 즐길 수가 있는데 영화를 먼저 보고 나면 그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원작은 그냥 텍스트의 나열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이라는 것을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은 아니다. 시각화하는 과정의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분량의 문제도 있고 제한된 상영시간 내에서 흐름을 잃지 않고 스토리를 무리 없이 풀어나가는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원작을 잘 살린 영화는 무척 드물었다.


오랜세월 고수해 온 내 원칙(?)에도 불구하고 [마션]의 경우 영화를 먼저 봤다. 우려와 달리 영화는 그 자체로 최고였다(리들리 스콧 감독님,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이런 경우 원작은 스킵 하는 편이 나은데, 책도 괜찮다는 얘기를 들어서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책도 좋다. SF라는 장르 특성상, 모르는 용어와 장비, 설명들이 잔뜩 나오는데 영화에서 해당 부분들을 눈으로 확인한 후라 이해가 잘 되어 몰입이 더 쉬웠다. 친숙하지 않은 장르인 경우엔 잘 만든 영화가 원작의 이해도를 높여주나 보다. 물론 책을 읽고 이것저것 잔뜩 상상하고 궁금해하다가 영화를 보고, 그 후에 다시 한번 책을 들춰봐도 좋았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도 그렇고, 마크 와트니도 그렇고 일단 살려고 하면 긍정적인 자세로 쉼 없이 움직여야 하나보다. 긍정적인 자세는 살아남기 위해 해야할 일들을 살필 수 있는 힘을 주고, 해야 할 일들을 하며 버티는 시간이 우울과 비탄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것을 막아준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낙천적이고 유쾌한 마크는 결국 살아돌아왔고 이 이야기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의 귀환이 기쁘더라. 책이 쓰인 방식이 마크 자신의 기록과 지구와의 통신 내용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읽고 있는 나를 상관없는 남이 아닌 관계자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유치하다 할지언정 전 세계가 각자의 잇속을 따지지 않고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아낌없이 비용과 시간, 각종 노력을 쏟아붓는 과정이 기분 좋았다. 거기에 작가의 글발도 한몫했다. 텍스트로 쓰여진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명 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감자를 키우던 때가 그립다. 감자밭이 사라진 후 막사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흙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굳이 다시 내다 놓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흙을 갖고 몇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놀랍게도 박테리아 일부가 살아 있었다. 개체 수가 꽤 많은 데다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거의 진공에 가까운 대기와 극지방에 가까운 기온에 24시간 이상 노출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꽤 감동적이다.

 짐작건대, 일부 박테리아의 주위에 얼음주머니가 형성되면서 그 안에 생존을 가능케 할 만큼 압력이 들어찼을 것이고 기온도 죽을 만큼 낮이 않았을 것이다. 수십만 마리의 박테리아들 가운데 한 마리만 살아남아도 멸종을 면할 수 있다.

 생(生)은 놀랍도록 끈질기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죽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 p. 36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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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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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 했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기준이나 잣대를 근거로 판단하고 비난하는 건 정말 몹쓸 일이다. 나 역시 철없던 시절에 그런 짓거리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기억나는 일화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당한(?) 기억은 꽤 많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제법 큰일까지.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나중엔 나와 같은 행동을 하길래 너무 억울한 마음에 이유를 따져 물었더니, 그땐 몰랐지,라는 말로 간단히 넘어가더라. 너무 어이가 없어 화도 나지 않더라.


 토니는 눈치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너무 깊게 관여하려고도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무리가 없는 선에서 대화를 이어가고 관계를 지속한다. 누구나 자신의 일은 크고 복잡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기를 둘러싼 타인들은 반대로 보이기 쉽겠지만, 토니의 경우는 정도가 심하다. 이렇게 눈치도 줏대도 없는 남자라니...


 동일한 사건에 대한 본인의 기억과 타인의 그것이 다른 경우는 흔하다.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일 수도 있다. 당시에는 각자의 입장차가 분명 존재했을 것이고 먼 훗날에는 시간이 흐른 만큼의 왜곡이 기억에 보태어질 테니까. 치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야 대부분 낯 뜨거울 정도의 일인 경우가 많겠지만 거기에 얽힌 타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긴다면 그냥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을 것이다. 토니의 철없고 눈치 없음에 답답도 하다만, 조금 안타깝기도 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잘 쓴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서툴고 철없던 어린 시절에 유독 마음 불편한 기억이 많은 나로서는 이런 작품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아직도 덜 컸다는 증거겠지만.


 변호사 과정을 밟았지만 환멸을 느낀 나머지 결코 일선에 뛰어들지 않은 친구가 하나 있다. 그는 나에게 말하길 변호사가 되겠다고 허비한 세월에서 하나 얻은 게 있다면, 더는 법도 변호사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했었다. 이런 경우는 주위에서 꽤 흔한 편이잖은가.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 p. 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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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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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져있을 땐 연인과의 시간이 짧기만 하다. 영화를 보든, 놀이공원에 가든, 술을 마시든 늘 즐겁고 상대방이 나만큼 즐거운지 살피게 된다. 대화는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다.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가까워지고 싶게 마련이다. 그러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관계는 조금 달라진다. 상대방의 반응은 예측 가능하고, 더 이상 궁금한 거나 알고 싶은 것이 사라진다. 긴 시간 동안 보고 듣고 관찰하여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뒤라 그렇다. 현명한 커플들은 그 평온한 침묵을 공유하고 나누는 법을 깨닫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지만, 새로운 자극을 찾는 타입이라면 관계는 지속되지 못 할 것이다.


제이크와 나탈리가 함께 한 시간은 겨우 두어 달이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외부와 차단된 듯한 공간에서 보낸 짧은 시간 후 그녀는 떠났고, 제이크는 그녀에 대해 충분히 알기도 전에 그녀의 결혼을 지켜봐야 했다. 제이크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탈리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고 한 것은 그래서이지 않을까. 게다가 제이크는 정치학 교수이다. 뭔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어 알아내고 납득할 만큼의 설명이 필요한 학자인 것이다. 나탈리와의 관계에서는 시작만 있었을 뿐, 진전이나 결론을 보지 못 했다. 풀지 못한 수학문제에 집착하는 과학자처럼, 제이크 역시 그렇게 나탈리에게 집착한 것은 아닐까. 심지어 그녀와 관련된 어떤 기록도 없다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 제이크의 집착은 더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은 사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다. 긴 역사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 댔지만, 사실 그 질문에 답하는 건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어야 한다. 사람은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따라 변해가며 그 주어진 역할에 맞는 모습을 하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모든 것을 끊어내야 한다면 어떨까. 지금껏 살아온 '나'를 버려야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위험한 범죄자들의 마수에서, 세상이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법과 질서가 보호해 줄 수 없는 '나'를 지키기 위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색다른 소재를 속도감 있고 재미나게 잘 풀어냈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더라. 영화도 있다던데 나왔는지 모르겠다. 한번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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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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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미미 여사님의 작품인데 이번 작품은 많이 약하다. 미미 여사님의 작품은 크게 두 갈래 사회파 미스터리와 에도시대물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파 미스터리에선 [화차], [이유] 등 걸출한 대작에 온 에너지를 이미 다 쏟으셨나 보다. 에도시대물은 쭉 괜찮은데 현대물에선 기력이 다하신 건가...


다단계 사업, 사람을 홀리고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피라미드 조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야기가 너무 늘어진다. 적어도 1/3은 들어내도 될 거 같다. 말이 많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긴장감이 떨어지다 보니 미스터리 특유의 재미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 미미 여사님이 악인이든 선인이든 사람 자체에 관심이 많은 건 알지만 사건의 전반적인 배경이나 흐름에 따뜻한 시선을 담아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에 강점이 있으시지, 심리묘사나 직접적인 설명을 통해 인간을 드러내려고 하는 타입이 아니기에 이런 늘어지는 말말말... 들은 작품을 깎아먹는다.


최고의 킬러는 총알을 낭비하지 않는다. 단 한방으로 급소를 뚫는 법이다.

아, 손목 아파... 들고 보느라 욕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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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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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는 가사부(우리나라로 치면 가정법원쯤) 판사이다. 이혼 소송이나 아동학대, 양육권 분쟁 등을 담당하며, 그 능력 또한 인정받고 있는 59세의 판사다. 남편의 어처구니 없이 당당하고 뻔뻔한 외도 선언에(결혼은 깨지 않고 바람을 피우겠다는, 죽기 전에 열정적인 관계를 가져보고 싶다는 바램으로) 피오나는 절망한다. 빠르고 현명하며 냉정하되 합리적인 결정을 수시로 내리고 납득시켜야 하는 일상 속에서 피오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깨지도, 차분히 돌아보지도 못 한다. 그 와중에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백혈병 환자 '애덤' 사건을 맡게 된다.


낮 동안 피오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고 밤이 되면 남편과의 관계에 괴로워한다.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삶을 택한 그녀에게 이런 위기와 변화는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이성과 논리, 법과 판례로 설명하고 정의할 수 없는 문제들,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고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드는 문제 말이다. 피오나는 애덤을 만나 종교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믿음과 음악, 시에 대한 순수한 열정 등을 보고 위로받는다. 그러나 항상 냉철한 이성을 빛내고 쟁점들을 두루 살피어 짚어낸 문장으로 훌륭한 판결문을 작성해 오던 피오나는 갑작스레 닥친 혼란으로 인해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서도 그랬지만, 한 번의 말실수, 순간적인 판단 미스로 인한 행동의 결과가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걸 일개 개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는 법이다. 최초의 의도나 당시의 상황,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드는 심경 변화, 반성과 후회 따위와는 상관없이 한번 사람의 손을 벗어난 것은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고, 이언 매큐언은 그런 비극에 정통한 작가이다. 안타까운 건 항상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은 한 번의 실수에 이토록 크게 고통받게 되는데, 잭 같은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도 큰 여파가 남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아온 부부만의 신뢰와 애정이 순간적인 열정과 쾌락에 밀려 내동댕이 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잭은 그걸 입에 담고 가방을 챙겨 피오나를 떠난다. 결국 후회하며 되돌아온 잭에게 피오나는 아무 말없이 새로 바꾼 현관 열쇠를 준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린 커피를 잭은 그녀 쪽으로 슬쩍 밀어준다.  뭐냐고, 이 불합리한 인생은...


애덤과 피오나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대목에 예이츠의 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의 두 번째 연이 등장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번역보다, 이 책에서의 번역이 더 좋더라. 그래 봤자 단어 몇 개 다른 것뿐이지만, 시의 경우엔 유독 큰 차이로 다가온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흥미진진하게 홀딱 빠져들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언 맥큐언이 아동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몸짓 하나, 서투른 행동 등을 통해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관계...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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