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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사랑에 빠져있을 땐 연인과의 시간이 짧기만 하다. 영화를 보든, 놀이공원에 가든, 술을 마시든 늘 즐겁고 상대방이 나만큼 즐거운지 살피게 된다. 대화는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다.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가까워지고 싶게 마련이다. 그러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관계는 조금 달라진다. 상대방의 반응은 예측 가능하고, 더 이상 궁금한 거나 알고 싶은 것이 사라진다. 긴 시간 동안 보고 듣고 관찰하여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뒤라 그렇다. 현명한 커플들은 그 평온한 침묵을 공유하고 나누는 법을 깨닫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지만, 새로운 자극을 찾는 타입이라면 관계는 지속되지 못 할 것이다.
제이크와 나탈리가 함께 한 시간은 겨우 두어 달이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외부와 차단된 듯한 공간에서 보낸 짧은 시간 후 그녀는 떠났고, 제이크는 그녀에 대해 충분히 알기도 전에 그녀의 결혼을 지켜봐야 했다. 제이크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탈리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고 한 것은 그래서이지 않을까. 게다가 제이크는 정치학 교수이다. 뭔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어 알아내고 납득할 만큼의 설명이 필요한 학자인 것이다. 나탈리와의 관계에서는 시작만 있었을 뿐, 진전이나 결론을 보지 못 했다. 풀지 못한 수학문제에 집착하는 과학자처럼, 제이크 역시 그렇게 나탈리에게 집착한 것은 아닐까. 심지어 그녀와 관련된 어떤 기록도 없다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 제이크의 집착은 더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은 사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다. 긴 역사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 댔지만, 사실 그 질문에 답하는 건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어야 한다. 사람은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따라 변해가며 그 주어진 역할에 맞는 모습을 하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모든 것을 끊어내야 한다면 어떨까. 지금껏 살아온 '나'를 버려야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위험한 범죄자들의 마수에서, 세상이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법과 질서가 보호해 줄 수 없는 '나'를 지키기 위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색다른 소재를 속도감 있고 재미나게 잘 풀어냈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더라. 영화도 있다던데 나왔는지 모르겠다. 한번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