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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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고전 많이 읽기 목표를 위해 선정한 첫 번째 책이다. 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제목에서 풍기는 섬뜩한(?) 기운에 쉽사리 집어 들지 못 했었는데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곧 결혼할 예비 신랑신부나 임신을 꿈꾸는 혹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는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모든 책에는 읽기 좋은 타이밍이란 게 존재한다. 굳이 지금 읽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려놓으라고~~~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꿈과 낭만이 가득한, 현실적인 문제는 생각지 않는, 아무 대책 없이 천진한 부부다. 혼전 성관계, 이혼, 핵가족, 마약 등 그들의 눈에 사회를 망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보수적이라는 둥, 어린 시절에 말 못 할 기억이 있을 거라는 둥의 뒷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 둘은 많은 아이들, 가족들이 자주 모이는 화목한 집안,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애정을 나누는 부부, 너른 정원이 딸린 저택 등을 꿈꾸고 이뤄나간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둘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그들만의 힘으로 관리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멈추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이루려는 것을 불가능하게 보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생각하며 비웃었던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모여 웃고 떠들 때 이 부부는 결국 그들이 옳았고 이를 증명해 냈다는 듯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과연 이 둘에게 왜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적게 낳으려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자신과 상대방의 차이를 저울질하며 가족과 친지, 친구들 앞에서 나눈 서약을 어기고 이혼을 하는지 등에 대해 잠시나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부정한 모든 것들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고 현명하고 신중한 사색의 결과라고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모든 상황이 본인들이 예견한 것과 달리 진행될 경우에 대한 대책을 이다지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있다니 어찌 보면 대담무쌍하다고 하겠다.

 

데이비드는 떠나왔던 아버지 제임스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려야 했고, 그가 세운 왕국은 아버지의 막대한 원조로 유지되었다. 약한 몸으로 끊임없이 아이를 낳는 해리엇은 결국 어머니 도로시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애들을 돌보고 집안을 꾸려나간다. 어느덧 아이는 4명이 태어났고, 이 위태로운 성은 바람 앞의 촛불 같았다. 마침내 태어난 다섯째 아이 벤은 해리엇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를 힘들게 했고 태어나서도 남다른, 다소 흉측한 외모와 행동으로 모두를 두렵게 했다. 해리엇 자신은 그 아이를 부정하고 감당하기 어려워 사라져버리길 바라면서도 다른 이들의 눈에 그리 비치는 것이나 타인이 그런 뉘앙스의 말을 꺼내면 거세게 반박한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벤은 결국 비정상아들이 모여있는 보호소로 보내지나 해리엇이 다시 데려오고, 그로 인해 가족은 점점 멀어지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 후에도 해리엇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데이비드 역시 뭔가 느꼈어도 인정할 타입이 아니다. 일어난 문제에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골칫거리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모든 일이 잘 돌아가는 듯 행동한다. 이 부부는 그들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감당하기 힘든 꿈을 꾸었고, 결국 무책임하게 행동했다. 그 둘은 따뜻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위에 걸린 그림같이 아름다운 가정을 꿈꾸었다. 그러나 현실 속의 가정에는 끊임없이 사람의 품이 들고 많은 돈이 필요한데다 빽빽거리며 보채는 아이와 돌보아야 할 부모가 존재한다. 그 와중에 감정을 나누고 대화를 이어가며 관계를 끌어가야 하는 것인데 그들에겐 그게 쉬워 보였나 보다.

 

책 속의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여타 고전 문학에서 보이는 수많은 형용 어구들과 지난한 묘사들, 서술들, 속마음을 감추고 변두리만 두드리는 갈 곳 없는 대화들은 온데간데없다. 한 페이지도 아니고 한 줄, 두 줄이 지나는 순간에 해리엇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이토록 빠른 전개 속에서도 작가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확실히 전한다. 이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구석 어색하거나 조잡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스릴러 소설의 그것처럼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며 흥미진진하다. 다만 어처구니없는 번역이 곳곳에서 짜증을 유발한다. 작품 자체는 소장하고 싶은데 이 책으로는 아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곱게 번역해서 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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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 인간관계가 귀찮은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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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란 모자라도 문제, 넘쳐도 문제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렇고, 연인 사이에서도 그렇고, 친구사이나 지인과의 관계에서도 말이다. 상대방의 관심과 애정을 자존심 따지지 않고 솔직하게 바랄 수 있는 유년 시절에 애정, 애착 관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

 

누군가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했을 정도니, 그 때 형성된 가치관, 사고 방식, 자존감 등은 이후의 삶에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잘 살아보겠다고 애쓰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물론 자기만의 기준으로) 재능을 개발하는 일이라거나 사회 생활에 적응하는 일,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마음이 맞는 친구를 얻는 일까지 어린 시절에 이미 정해진 싹수에 따라 정해져 있다니 뭔가 억울하다. 내게도 해당되는 내용들이 상당 부분 있었고 나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행동 방식이나 사고 형태에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원인이 되어 지금껏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애착관계의 회피형과 불안형에 대해 설명하는 초반 부분을 넘어가면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후반부는 좀 더 재미나게, 자신과 주변인들을 대입하며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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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 - 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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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에 열광하거나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내는 편은 아니다. 누가 이 작가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다만 존경심이랄까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 깍듯이 대접해야 할 어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가의 개인사에 대해 뭔가 아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으며 감탄을 연발한 적도 없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아프리카 어느 한 부족의 지혜로운 촌장님스러운 느낌? 한 세대를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익혀 후손들에게 이로운 조언을 해주고 과거를 떠올리게 해주며 삶의 지혜를 전하는 그런 포스가 그의 작품엔 있다.

 

말이 장황했던 거에 비해 이 작품은 별로다. 2권이지만 후딱 읽을 수 있을 만큼 치밀하지 못하다. 이야기가 슬렁슬렁 흘러간다고나 할까. 자간, 행간의 넓이만큼이나 여유 만땅으로 느긋하다. (좀 더 촘촘히 편집해서 한 권으로 만들었어도 될 텐데...) 범인도 금방 알 수 있고, 주인공 뒤통수 맞을 일도 뻔하고, 결말도 너~무 예상대로다. 작품에 선한 이라곤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어째 등장하는 인물마다 다 이 모양인가 싶을 정도이지만, 악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만큼의 허술함과 멍청함도 지니고 있다. 그냥 머리 복잡할 때 가볍게 읽기 좋다. 화장실에서 볼 일 볼 때 들고 가시길... 책에 그다지 정신 팔지 않고 볼 일(?)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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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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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무거운 책을 올리려니... 나도 무겁다, 마음이.

유명한 전쟁사, 영웅담, 전투나 전술 이야기, 화려한 무기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전투의 꽃은 백병전이지,라며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곤 했다. 가볍게 입에 올렸던, 재미있다고 망설임 없이 지껄였던 순간들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옴을 느꼈다.

물론 모르지는 않았다. 노인들, 여자들, 아이들... 전쟁이 나면 전장 외에서도 언제나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비단 총탄에 국한되지 않은 다른 이름의 고통들... 화염, 폭력, 약탈, 강간, 고문 등 힘없고 약한 이들이 당한 기록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위생병이나 간호사 외에도 다른 역할과 의무를 가지고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 직접 전장을 누빈 여인들이, 소녀들이 있었다.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나면 희대의 독재자가 지닌 악의 무게는 더욱 크게 그려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몇몇 영웅들과 정치인들에게 비친 스포트라이트는 유독 화려하다. 그러나 이젠 어린 소녀들이, 많은 여인들이 그 자리에 함께 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약한 이들을 지켜냈다는 명분에 어깨를 활짝 폈던 남자들이 감추고 싶었던 여자들의 전쟁이 책장을 펼치자마자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린다. 과거의 역사도, 미래의 역사도 갈 길을 잃은 이 나라에, 이 책을 읽고 가슴 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던가. - p. 32

나도 그네들처럼 오랫동안 우리의 승리가 두 얼굴을 가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하나는 아주 멋진 얼굴, 다른 하나는 무시무시한 얼굴. 하지만 둘 다 흉측한 상처투성이라 봐줄 수가 없다.

- p. 59

어쩌면 우리는 수시로 전쟁과 혁명을 치르느라 과거와 연대하며 혈통의 그물을 엮어가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오래전 과거를 돌아보는 법도, 그 과거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 법도. 우리는 서둘러 잊었고 서둘러 흔적들을 지워버렸다. 소중히 간직한 증언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유죄의 증거가 될 수도 있었기에. 할머니, 할아버지, 딱 거기까지만 알고 누구도 그 이상의 조상은 알지 못한다. 뿌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역사는 만들어졌지만, 낮뿐인 삶이었으며 기억도 짧았다. - p. 192

30년이 지나서야…… 모임에 초대도 하고……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오나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 p. 221

나는 그저 눈물만 흘려, 말은 못하고…… 나 스스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확신이 안 서는 걸 어떡해? 믿게 할 자신이 없는 걸…… 사람들은 그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지. 고통스러운 이야기 따위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 - p. 437

피는 물이 아니야. 그래서 함부로 흘리면 안 돼지. 그런데 자꾸 피가 쏟아져. 하루도 피를 보지 않는 날이 없어…… 텔레비전에서…… - p. 463

바닥에 쓰러진 독일군 부상병이 고통에 못 이겨 두 손으로 땅바닥을 움켜쥐던 모습이 생각나. 그때 우리 병사가 그 독일군에게 그랬지. `손대지 마. 이건 우리 땅이라고! 네놈 땅은 네놈 나라에 있잖아, 여기서 꺼져…… ` - p. 48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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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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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말하다"에는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표현들이 다수 출몰하여 그다지 즐겁게 읽지 못 했다. 하나를 굳이 꼽자면... 소설을 쓸 때 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일 뿐 작가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등의 표현 같은 거 말이다. 이런 식으로 꾸며진 표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김영하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건 애매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나 현상을 담백한 단어와 문장으로 넘치지 않게 표현해 주는 데 있었다. 작가가 손이나 펜을 놀려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는 작업을 하면서 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말을 하다니... 성공한 화가에게 작품을 그린 과정에 대해 묻자, 붓이 가는 대로 두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김빠진 잘난 척 같은 표현. 물론 작가가 배경과 상황을 설정하고 인물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한 뒤엔 특정 상황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지 알 수 있고 그에 맞춰 쓴다는 사실은 이해한다. 다만 저 표현이 거슬린다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문장들이 책 곳곳에서 튀어나와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기 힘들었다. 다음 책은 텀을 좀 두고 읽어야겠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즉,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새로 나온 사진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카메라로 더 멋진 사진을 찍는 삶입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는 삶이 아니라 휴대폰을 잠시 끄고 글을 쓰는 데서 얻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의 대부분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유산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과 관련되었다는 겁니다. 글을 쓰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극에 참여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 여기엔 대부분 큰돈이 들지 않습니다. - 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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