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해리 홀레 시리즈가 아니었다. 그런데 해리 홀레 시리즈보다 낫더라.
요 네스뵈는 이야기를 잘 꾸려나가는 작가다. 재미도 있고 상상의 여지도 충분하고 독자로 하여금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게도 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볼 때 이 작가에게는 꽤나 큰 단점이 보인다. 작품을 읽다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늘어놓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이 지나치게 많다. '시'라는 장르도 그렇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역시 마냥 벌려놓는다고 좋은 건 아니란 말이다. 물론 이 분야의 유명작들 중에는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여러 사건들과 소재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퍼즐의 그것처럼 꼭 맞아들어가며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방식을 훌륭히 다루고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유독 두꺼운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에는 여러 소재들이 병렬구조로 늘어서 있을 뿐 연결고리는 무척이나 약하고 다소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것들을 쳐내더라도 이야기 흐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 '아들'은 심플하고 간결하다. 꼭 필요한 재료들이 모여 제대로 맛을 내고 있다.
소니는 존경하던 아버지가 부패한 경찰로 자살하자 철저하게 망가진다. 전도유망했던 레슬링 선수로서의 생활을 뒤로 하고 마약에 절어 지내며 감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니는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과 마약을 꾸준히 공급해주는 대가로 자신에게 대신 살인죄를 넘기고 살아가는 진짜 범인들을 직접 단죄하러 탈옥한다.
이야기는 '소니'를 중심으로 흐르지만, 시몬 케파스 경장이나 마르타, 카리, 엘세 역시 자신의 지난 세월에서 뻗어나온 과거의 기억과 흔적들에 매어 있고 여전히 그 영향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소니의 복수극도 흥미롭지만 각자가 본인의 과거와 어찌 이별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지도 비교해 보는 재미도 꽤 나쁘지 않을 것이다. 책 속에, 아들의 의무는 아버지처럼 되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뛰어넘는 것이라는 문장이 있다. 동감이다. 그래야 옛것은 흘려보내고 세대가 바뀌며 세상이 변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어 왔던 사람들은 이 작품의 스타일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전개가 빠르고 밑밥도 없으며 진도도 쭉쭉 나간다. 지지부진하게 사건의 주변을 계속 배회하며 변죽을 울려대다가 많은 페이지만 잡아먹는 전작들과는 무척 다른 방식이다. 출판사가 작가를 숨기고 출판했으면 몰랐을 수도 있겠다. 다만 요 네스뵈를 이 책으로 시작한다면, 해리 홀레 시리즈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 속에 무심코 오래 서 있다가 어느 순간 너무 젖어버려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아들'은 따뜻하고 빛이 느껴지며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