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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은 불편하다. 잔인한 설정과 묘사가 너무 지독한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피해자와 나를 동일시하게 되고 그 고통과 절망의 깊이를 잠깐이나마 엿보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책에 쓰여있는 텍스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책 속의 인물에 자신을 대입하다니, 언뜻 들으면 굉장히 그럴듯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대상이 로맨틱 코메디가 아니라 스릴러 소설이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납치되어 감금된 채 끔찍한 고문과 성폭행을 당하는 소녀가 등장하고, 해부하고 있던 시체에서 납치된 딸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는 법의학자 파울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등장한다. 말 그대로 미치고 팔딱 뛸 상황이 줄줄이 이어진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한 법체계의 처벌 수위는 일반인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 이 책에서도 등장하지만 어린 소녀에게 온갖 몹쓸 짓을 다하고 더 큰 고통을 예고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만든 범죄자들의 처벌보다 세금 탈루나 공금 횡령 등의 범죄로 대한 형량이 훨씬 무겁다. 세상살이 뿐만 아니라 범죄에 대한 처벌기준에도 가진 자들의 논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힘 없는 어린 소녀와 그 가족들이 입은 정신적/물리적 고통과 충격 따위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일시적인 금전적 손해가 지닌 가치에 이르지 못한다는. 도대체 이 지구 상에 사람답게 살만한 곳이 있기는 한건가.
스릴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1인으로서는 우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느라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너무 소비한 듯 해서 다음엔 좀 더 가벼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눈은 책 표지에 나와있는 작가의 다른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일단 다음 책까진 텀을 좀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