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 을유세계문학전집 38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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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 필 적까지는 아니지만 꼬꼬마 시절에 읽었던 (그때는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이었다) 고전이다. 책 많이 읽던 꼬마여서 괜시리 어른스러워 보이는 책들에게도 종종 손을 대곤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읽긴 읽었으되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제대로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그것은 분명 다를테니 의미가 없진 않겠지만 말이다.

 

워낙 고전인지라 "키다리 아저씨"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들에서 주인공이 히스클리프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 조악한 기억에 그들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을 무척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바라보았으며 히스클리프란 남자의 매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묘사했었던 것 같다. 글쎄... 강한 남자, 나쁜 남자의 매력이라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내가 느낀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 집착과 애증의 느낌이었고 히스클리프는 매력적이라기 보단 비뚤어진 유아기적 심성을 지닌 위험인물일 따름이었다.

 

최근엔 문화계에서 실질적으로 체온을 나눌 애인과 소울메이트라 이름지으며 정신적 교류를 나눌 이를 따로 두는 여자들이 종종 등장하고, 양다리라는 적의가 가득 담긴 단어보다 어장관리녀라는 신개념의 사용이 자리잡은 뒤라 그닥 생경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사실 캐서린의 행동이 다를 게 무어냐. 히스클리프의 존재가 곧 자신이라 하지만 현실적, 사회적 제반조건들 때문에 에드거를 선택한다. 그 후에도 그녀가 히스클리프를 놓으려 하지 않았고 그가 떠나자 병까지 얻는다. 황야에서 마음껏 달리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든 말과 가슴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쏟아낼 수 있는 히스클리프와 아름다운 비단옷에 싸여 학식과 교양이 가득한 대화, 부드러운 미소와 자상한 배려의 손길 등이 함께하는 그림같은 풍경, 그 어느 쪽도 포기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히스클리프의 그것은 본능이나 인간으로서의 천성에 가까운 것이라 에드거를 선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가 착각한 것은 그녀의 감정과 선택의 이유가 아니었다. 히스클리프 역시 같은 것을 원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히스클리프는 주워온 아이다. 근본도 모르고 흰 피부를 지니지도 못했다. 힌들리가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 후 그나마 지니게 된 안정된 자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무식하고 천한 몸종의 신세로 전락해야 했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창가에서 함께 린턴가를 바라보다가 안으로 받아들여진 캐서린처럼 히스클리프도 그들에게 속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시받고 멸시받고 학대받는 존재가 아니라 인정받고 애정어린 손길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캐서린은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랑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전부는 아니란 것이다. 캐서린이 넬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장면에서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그를 선택할 수 없다는 얘기만 듣고 집을 떠난다. 대다수의 드라마에서 그렇듯이 자신에게 민감한 부위의 얘기만 듣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기껏 엿듣다가 어찌 그리 발끈하며 금방 되돌아서서 나가는지... 이런 설정은 고래적부터 존재했었나 보다. 그치만 히스클리프가 뒤에 이어진 그녀의 진실된 마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후에 돌아온 그의 행동이나 그녀의 사후에 그의 언행을 봐도 그녀의 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니니까. 단지 그녀의 선택이 문제가 되었고 히스클리프는 그들의 세계에 속할 길이 영영 사라진 것이니까. 놓친 물고기가 더 커보이고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애틋한 법이다.

 

차라리 히스클리프가 3년간 떠났다가 돌아온 후 능력을 쌓아 힌들리의 재산을 뺏어 자신을 괴롭힌 그에게 복수하고 캐서린의 주위에서 예의바르게 얼쩡거리다 다시 한번 구애를 했다면 그의 사랑을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통해 얻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복수도 하고 어느 정도 지위를 찾아 마치 개츠비처럼 캐서린과 멋지게 재회하고 최민수처럼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라고 했다면 말이다. 히스클리프가 한 복수란 건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극복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지능적이고 잔혹한 살인마스런 행위일 뿐이다.

 

유령이 되어서까지 서로를 찾는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나는 그의 자손들에게 남겨진 기억과 상처들이 더 안타깝다. 그들은 부모 대의 증오와 미움, 비뚤어진 사랑에 대한 희생양일 뿐이니까. 그런 게 사랑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욕심과 아집, 갈 곳을 잃은 비뚤어진 애정의 말로로 인해 비참해진 이들의 슬픈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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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3-11-15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뿔소님, 안녕하세요~~
이 페이퍼는 '최민수씨 음성 지원'이 되네요. *^^* 이 부분 좋아요.
저도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유아적이라는데는 완전 찬성이구요.
지독한 사랑, 이런 지독한 사랑은 작품에서만 만나고 싶어요.

코뿔소 2013-11-1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반가워요~ ^^

저도 이런 사랑은 TV에서만 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