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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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야 야나기하라' 란 아시아계 미국 작가가 만든 동양과 여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작가의 인종과 성별은 이 책에 있어 또 하나의 캐릭터다. 작가는 작품에서 본인과는 교집합이 없는 허구의 이야기를 말한다. 백인, 흑인, 게이, 아동 성폭력, 자해 등 책에 등장하는 소재 어디 하나 작가와 겹치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 허구의 이야기가 얼마나 자신을 매혹시킬 수 있는지, 이 처절한 뻘밭 같은 이야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작가는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소설 속에서 감정을 쌓아올리다가 무너트린다. 마치 무거운 벽돌로 벽을 쌓듯이 감정과 전개를 쌓아가다가 그 벽을 무너트린다. 그리고선 다시 시작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책은 2권 합쳐서 천 페이지가 넘는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슬픈 듯 찡그리고 있는 남성의 얼굴로 꽉 찬 표지에 눈이 갔다가 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두께에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맨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까지 오르고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 예로 유튜브에 이 책의 영문 제목인 " A Little Life"를 검색하면 북 리뷰 영상이 끝도 없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천 페이지가 넘음에도 빨리 읽힌다. 


먼저 전개가 빠르다. 감정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임에도 진행이 빠르다. 등장인물들이 20대 대학시절부터 시작해서 50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개가 무척 빠른데, 거의 한챕터당 10년의 시간이 쑥쑥 지나간다.


익숙한 전개로 이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비튼다. 

그런 말이 있다.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는 25개의 성공 패턴 중 23개를 따르고 2개를 비튼다고. 그럼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신선하다고 느끼는 영화가 나온다고. 이 책은 정확히 그 공식을 따른다. 그래서 쉽게 따라 읽을 수 있다. 처음엔 4명의 남자 대학생이 나오는데 1명은 예술가, 1명은 부잣집 출신의 건축가, 1명은 잘 생긴 배우 지망생, 그리고 주인공인 주드는 상처를 가진 속을 알 수 없는 변호사이다. 무척 익숙한 4명의 조합이다. 섹스앤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연상되는데 그런 행동들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고 서로의 고민을 터놓고 의지한다. 그리고 다들 쉽게 쉽게 성공한다. 익숙한 패턴이기에 문맥이 쉽게 파악되고 속도감이 붙는다.


그리고 익숙한 패턴을 벗어난 지점에서 이 책의 강점이 드러난다. 작가는 소설 내내 주인공 주드의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그 불행한 것으로 암시되는 과거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슬쩍슬쩍 보여준다. 한 번에 쭉 이어 보여주지 않고 시간 순서를 앞으로 갔다가 뒤로 잠깐 돌아가는 식으로 과거를 추리하게 한다. 마치 스릴러 소설과도 같이 독자가 주인공의 과거와 어두운 면을 추측하게 하는데 그 문제의 과거가 아동 성학대이다.


이 작품은 "고통의 포르노"라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동 성폭행의 피해자가 50년을 살면서 얼마나 자해하고 심적 고통을 겪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더 나아가 주인공의 발을 자르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게 한다.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압도적인 감정들을 한 번에 당해낼 수가 없어서 조금씩 나눠 읽었다. 100페이지만 읽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감정을 누르기 위해 중간중간 생뚱맞은 자기 계발서 혹은 재테크 책을 읽어야만 했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 게이 로맨스란 쉽지 않은 소재와 압도적인 분량으로 인해 선뜻 이 책을 구매할 독자는 거의 없겠지만 완독하지 못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감정이든 결국엔 다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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