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그대 차가운 손은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인 것 같다.
장운형이라는 조각가가 스케치북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다. 그는 실종이 되었고, 그 스케치북은 작가인 H에게 전달된다.
소설의 도입부와 말미에만 H의 시각을 빌렸을 뿐, 이 소설의 주된 알맹이는 장운형이란 사람이 쓴 이야기이다. 그 스케치북에는 그가 어릴적부터 실종되기 전까지 사건들이 담겨있는데 결국 모든 이야기의 축은 껍질과 알맹이, 진실과 거짓, 가면과 맨 얼굴의 의미 찾기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주인공은 그의 유년시절에서 어머니의 언제나 똑같은 미소를 짓는 하얀 탈바가지 같은 얼굴과 외삼촌의 잘린 손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의 중반부에는 뚱뚱한, 그래서 사랑을 얻기 위해 살을 빼고, 폭식증과 거식증을 오가며 살아가는 L과, 또 어릴적 육손이었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스스로 완벽이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가는 E가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들은 주인공인 장운형이 계속해서 해나가는 석고로 몸을 떠내는 작업들과 연관 되면서 자기자신에게 껍질과 알맹이에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강의 작품은 상당히 어둡다. 이 작품도 역시 그랬다. 모든 인물들은 신체적 결함내지는 상처를 가지고 있고, 주인공이 하나의 껍질을 떼어내는 의식을 치르는 무대인 그의 지하 작업실도 왠지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이중생활에 대한 비극을 폭로하느라 그렇게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로 진행을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모두를 껍질로만 판단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들 얼굴에 보기 좋은 가면을 하나씩 쓰고서는 상대방에게 그 가면처럼 보여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위장술에도 틈새는 있는 법! 자신의 상처와 흠은 아주 찰라적 순간이라도 그가면 위에 어리다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람의 몸을 다 떠내고 난 석고틀, 즉 그 껍질을 들여다 보며, 장운형은 공허감과 동시에 안락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껍질을 자신의 관으로 쓰기를 원한다.
껍질 그것은 진실을 가리는 허망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껍질이 있기에 우리는 타인 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E와 실종되기 전, 즉 그의 스케치북의 마지막 부분에서 E는 자신의 석고틀을 밟아서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껍질을 부수고 나서야, 그녀는 알몸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진정 껍질을 벗어던지고, 솔직해지고 자유스러워진 것이다.
아마도 E와 장운형, 그 둘은 가식과 위선을 벗어 던진 채, 멀리 떠나버린 것이다. 자유를 찾아서 말이다.
검은 사슴
이 작품은 한강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1998년에 출간되었던 것을 평론가인 백지은의 해설을 붙여 2017년에 다시 펴낸 것이다. 한강의 장편소설에서 잘 드러나는 특징인 서술자의 교차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집중해야만 한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비로소 등장인물들의 형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그들이 엮어내는 줄거리가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검은 사슴의 존재도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도시에서 살면서 우연히 인연을 맺은 의선과 인영, 그리고 나의 대학 후배인 명윤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차츰 기억을 잃어가는 의선과 인영은 한때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면서 안면을 익힌 관계이다.
그러나 어느날 옷을 다 벗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갑자기 사라진 의선이 인영의 집에 찾아오면서 그들의 인연은 다시 이어지게 된다. 함께 생활하던 의선이 인영이 찍어서 모아 두었던 사진과 필름을 태우고, 그로 인해서 의선은 다시 인영에게서 사라진다.
대학 시절 교내 문학상을 받았던 인영의 후배 명윤이 사라진 의선을 만나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이들의 관계는 다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명윤에게서 사라진 의선을 찾아, 인영과 명윤은 그녀가 내뱉었던 희미한 말의 단서를 찾아 탄광이었던 함곡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잡지사 기자였던 인영의 취재 대상이었던 사진작가인 장이라는 인물을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서, 이들 각자의 사연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각자 지난 시절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작품이 전개되면서 어두운 과거가 각자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의선에 대한 명윤의 집착은 과거 집을 나갔던 여동생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연골에서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의선은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도 그곳을 찾았고, 그녀의 흔적을 좇아 의선과 명윤이 그 뒤를 따르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벌어지기도 한다.
함곡에서 만난 장의 과거를 통해 탄광에서의 생활이 드러나기도 하며, 결국 등장 인물들 모두는 의선 혹은 그의 아버지인 임씨와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진다. 흔히 막장이라고 불리는 탄광에서 광부들 사이에 전해지는 검은 사슴의 전설은 이 작품의 소재이자 복선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살면서 햇빛 보기를 원해 광부들에게 뿔과 이빨까지 빼앗기고, 광부들은 두려운 대상인 검은 사슴을 상처를 방치한 채 도망가는 이야기가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아마도 작가는 기억을 잃어가는 의선의 형상에 ‘검은 사슴’의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인 각 장마다의 서술자의 교체는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때로는 인영의 관점에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때로는 의선이나 명윤 혹은 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온전한 3인칭 시점이 아닌, 시점의 교체는 한강 소설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다소 어두운 삶의 흔적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만나 엮어내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고, 특히 어둠과 ‘빛’의 이미지가 인물들의 삶과 관련하여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향인 연골의 어둠과 어둑한 반지하에서 살던 의선이 4층 혹은 옥탑방에서 살던 인영과 명윤의 세계에 틈입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빛을 동경햇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서로 적당한 거리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로는 서로 얽히고 때로는 어긋나는 인간관계의 면모를 이 작품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여수의 사랑
여수의 사랑은 정말 좋은 소설인 것 같다. 내가 만난 한강의 작품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 그리고 이번 여수의 사랑이다. 그 중 이 단편집이 단연코 으뜸이다.
총 6개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좋았던 작품은 여수의 사랑,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특히나 야간열차의 경우에는 다른 작품에서와는 달리 출구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보여서 더 특별했다.
내러티브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강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이 인상적이다.
이 부분은 직접 작품을 읽어보면서 생각해보면 좋은 것 같다.
사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그럼에도 도시의 야경은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걸까? 도시의 빛은 나를 아프게 하는 그것이지만, 혼곤한 밤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그 영롱함에 어쩐지 눈물까지 난다.
맨 마지막에 해설 제목이 희망 없는 세상을, 고아처럼인데 참 잘 지은 제목같다.
하지만 그 고아에게는 꿈이 있다. 자기도 그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모호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분명하기에 뚜렷하게 존재하는 꿈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희망이 없는 것이다.
마냥 절망적이고 어두운 것이 아니다. 고통 자체가 찬란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하는 점이다.
전혀 서정적이지 않아서 서정적인 작품. 그 누구도 달래줄 수 없는 쓸쓸함을 이 작품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위무해준다. 전혀 온정적인 손길이 아니기 때문에, 온기가 되는 작품. 요즘처럼 위로 산업이 판치는 세상에서 어떤 게 진짜 위로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낭떠러지 끝 절망 앞에서의 호흡이 놀랍게도 차분하고 평온하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문장이 워낙 아름다워 곁에 두고 몇 번 더 읽고 싶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