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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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에 실린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인물과 시점,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하나의 세계를 공유한다. 


로봇이 인류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질서를 세운 사회. 그 안에서 인간이었던 존재들은 흡혈인이 되어 밤을 떠돌고, 자의식을 가진 로봇은 제거 대상이 되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점령지에서 저항군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는 이름 없는 흡혈인의 시선을 따라 다시 한번 그 세계를 비춘다. 화자는 로봇 마리카의 도움으로 도망치는 과정에서 네빔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반역자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재를 의심받으며 살아온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스스로 수용소에 들어간다. 그가 들려주는 말, "'우리들'은 악마에게서 왔지만 '나'는 신에게서 왔다."는 문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유일한 진실처럼 읽혔다.


<밤이 오면 우리는>은 같은 세계의 조금 앞선 시간을 그린다. 인간이었을 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흡혈인 화자가 로봇 빌리와 동료 마리카와 함께 도망치고, 싸우고, 잃어가는 이야기다. 감정을 절제한 문체 속에서 폭력과 상실은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오히려 그 절제가 더 큰 여운을 만든다.

"나는 나의 죽음을, 내 죽음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이 문장에 이르러서야 이 소설이 끝내 묻고 있던 질문이 선명해진다. 살아남는 것과 인간으로 남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


<예언자>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점령지의 교사였던 마리카가 저항군의 운전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신화적 서사와 현실의 이야기가 교차하다가 하나로 맞물리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오래 남은 것은 이 한 문장이었다.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다시 저항할 수 있었다.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 곧 저항이었다."

거창한 희생이나 영웅적인 행동만이 저항은 아니다. 그저 하루를 더 살아내고,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저항이 될 수 있다는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따뜻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누가 규정한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기계가 정한 질서대로 살아갈 것인가. 세상이 붙여준 이름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스스로 선택한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작가는 이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들을 담담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끝까지 따라간다. 그래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질문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오게 된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나는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어디에서 왔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존재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가.

그 질문 하나가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이 오래도록 남기는 가장 깊은 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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