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파헤치는 집요한 능력과 두려워하지 않는 심성으로 정부와 해병대, 세타스 카르텔에게마저 주요 인사가 된 그녀는 이제 다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었다. "어머니가 지난 3년간 맞서온 세타스, 어머니 때문에 조직원들이 죽거나 수감된 카르텔, 공포를 연결고리로 삼았던 지배구조를 어머니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하여 와해시킨 범죄 조직이 마침내 보복에 나섰(p283)"고 미리암은 총 8발을 맞는다. 그녀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가 카렌을 살해한 가해자들을 찾아다닐 때 묵묵한 조력자가 되었던 아들 루이스 엑토르가 미리암이 남긴 모든 것을 받아 여동생과 어머니를 위한 복수를 마무리지으려 한다. 그러나 불의에 맞서 온몸을 던졌던 미리암은 이제 없다. 그리고 세상은 그녀가 존재하기 이전으로 손쉽게 돌아간다. 이제 세상에는 폭력과 슬픔만이 몸집을 불린 채 숨쉰다. 미리암을 기억할 사람, 누구인가.
이 책은 한 개인이 역사와 무관할 수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알려준다. 완전히 혼자서 존재하는 개인은 없다. 모든 인생은 시간과 사건 위에 배치되고 뒤섞이며 각각의 모양과 서사를 갖는다. 우리는 훗날의 누군가가 배울 역사서 속의 사건을 실시간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엄의 이야기는 어쩌면 개인의 서사일 수도, 어쩌면 단체의 서사일 수도, 어쩌면 세상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어쩌면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사회 문제에 엮이지 않고자 그러 조용히 살길 바랐던 한 가족 구성원의 납치, 살해, 복수, 연대를 거치며 사회와 역사의 일부로 걸어 들어간 사람의 이야기.
우리가 바라던 것이 확실하게 구현되어 있다. 이곳저곳 마구 누빌 수 있는 친화력과 라포, 사실에 기반한 꼼꼼한 취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와 긴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필력 같은 것.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고, 읽고 난 후에는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며 마음이 약간 차오르는 것. 마구잡이로 책을 찍어내는 시대에 사람을 위해 사람이 오래 공들인 책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2025. 12. 11 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