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 식물의 마음으로 읽어내는 관계의 소리
김지연 지음 / 북스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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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이 책은 제목부터 뭔가 말랑말랑하다.
제목만 읽어도 뭔가 창으로 따스한 햇빛이 스며들 것 같고,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바람이 들어와서 커튼과 내 마음을 기분좋게 살짝 흔들어 놓는 느낌이다.

저자는 아이와 함께 식물원에 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식물 키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식물 키우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멀쩡히 살아 들어온 식물 여럿이 죽어서 나갔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식물마다 원하는 환경이 달랐다는 것이었고, 식물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다보니, 식물을 통해 인간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과물이 이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표지에는 제목 옆에 제목보다 좀 더 자그마한 글씨로 '식물의 마음으로 읽어내는 관계의 소리'라고 적혀있다.

이 책의 시작은 라벤더로 시작한다. 글의 제목은 '바람에 흔들리게요 창문을 열어주세요.'
라벤더는 환기시키면서 바람을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사온 라벤더가 집에서 죽은 것이 문을 닫아두어서 질식사한 것을 알고, 책에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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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였구나... 바람... 바람을 맞고 싶었구나. 결국 라벤더가 병사가 아닌 질식사로 떠났단 말인가?" 우리 집에 속해 있지만 바깥바람과도 놀고 싶었던 거구나. 내 집에 들어온 '내 식물'이라고 창문을 닫아놓고 '넌 우리 집 공기만 마셔'라고 한 내 행동은 지극히 이기적이었다. 라벤더는 우리 집 공기 이외에도 바깥공기도 마시고 싶고 바깥바람에 산들산들 춤도 추고 싶었던 것이다... 내게도 가족과의 공동체 역할 이외에 환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가족 안에서 서로 마시는 공기 말고 다른 공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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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계속해서 여러차례 다양한 식물이야기가 소개되고 관련된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들로 이책이 채워져 있다. 책의 중반 즈음에 나오는 감나무 이야기 '우정 불변의 법칙은 없다'에 맘에 드는 부분이 있어서 아래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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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감나무는 나무에 감이 달린 게 아니라 감을 얻기 위한 나무였다. 나는 나무에 관심이 없고 감에만 관심이 있었다. 관계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열매만 따려는 관계, 내가 아닌 내가 가진 그것에만 관심을 두고 다가오는 관계 말이다... 중략
그런데 마치 필요할 때만 검색창을 띄우고 답을 취하고 나서는 화면을 지우는 것처럼, 친구는 내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답을 얻은 뒤에는 한동안 연락도 없었다. 난 기분이 점점 상했다. 내 마음이 상한다고 말하자니 내가 너무 지질해지는 것 같고 그러지 말라고 요구하자니 타인의 감정을 휘두르는 이상한행동 같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어렸을 때는 정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한없이 속내를 털어놔도 부끄럽지 않고 후회되지 않는 친구. 그 사이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게 친구사이를 멀어지게 할 이유가 될까?

그러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을 읽게 됐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관계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나와 너의 관계(Ich-Du)'와 '나와 그것의 관계(Ich-Es).
나와 너의 관계(Ich-Du)는 상대방을 순수하게 인격체로 대한다. 문제는 나와 그것의 관계 (Ich-Es)인데, 여기서 '나의 만남의 대상은 '너'라는 인격체가 아니다. 나의 목적과 필요에 따른네가 가진 '그것'이다. 즉 나는 '너'를 만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필요해서 '그것'을 만나는 것이다.
마치 내가 감나무를 볼 때 나무에는 관심도 없이 감만 주시하며 따 먹을 생각만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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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들처럼 식물에서 확장된 인간관계에 관한 멋진 생각들, 그리고 나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어서 책이 맘에 들었다. 식물 이야기도 읽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풀어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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