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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좋아하는 비건 한식 대백과 - 시카고에서 차려 낸 엄마의 집밥
조앤 리 몰리나로 지음, 김지연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2월
평점 :
*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남편이 육식에 대한 고민 끝에 채식을 시작한 이후, 나 역시 채식과 비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요리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라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검증된 레시피를 찾아 그대로 따라 하는 스타일인데, 고기 없이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찾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비건 요리법을 발견하면 늘 반가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러던 중, 마치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으로 <외국인도 좋아하는 비건 한식 대백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조앤 리 몰리나로는 미국 요식업계에서 권위 있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수상한 요리 크리에이터이자 인플루언서입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녀는 본명인 이선영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으며, 비건 한식 레시피를 개발하고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태어나고 자란 변호사 출신으로, 2016년부터 채식을 시작하며 'The Korean Vegan' 프로젝트를 통해 독창적인 비건 한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따뜻한 이야기를 공유해 왔습니다.

한식과 비건 음식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녀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다양한 요리 매체에도 소개되었습니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비건 한식의 매력을 꾸준히 알리며, 이를 대중화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분량이 꽤 많아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가독성이 좋아 쉽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내용 덕분에 술술 읽히고, 다양한 레시피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책 속에는 빵, 반찬, 김치와 나물, 찌개와 국, 면 요리, 길거리 음식, 한 그릇 요리, 디저트까지 정말 다양한 비건 한식 레시피가 담겨 있어 ‘대백과’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음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자의 김밥에 대한 추억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어릴 적 자동차 여행을 자주 다녔다. 어디를 가든 차 안에는 항상 김밥이 있었다. 할머니는 노란 단무지, 초록빛 시금치, 당근, 계란말이를 넣은 김밥을 몇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만드셨고, 상하지 않도록 포일로 단단히 감싸셨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김밥이 싫었다. 나는 미국인이 되고 싶었고, 김밥은 그런 나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불편한 존재였다. 나는 한국인의 속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미국인의 상징인 갭 청바지를 사고 싶었고, 할머니가 힘들게 싸주신 김밥 대신 맥도널드 해피밀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김밥을 감싸고 있던 포일을 다시 벗겨 한입 베어 물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영화 <라따뚜이> 속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까다롭고 냉소적인 음식 평론가 안톤 이고(Anton Ego)는 처음엔 라따뚜이를 보고 시골 음식이라며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한입 먹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어린 시절, 따뜻한 미소로 음식을 내어주던 어머니, 그리고 그 순간 느낀 위로와 안도감.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따뜻한 감정과 기억이 그의 마음을 단숨에 과거로 데려갑니다.
이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 음식이 지닌 기억과 감정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인도 좋아하는 비건 한식 대백과>는 단순한 레시피북이 아니라, 음식이 우리 삶 속에서 추억이 되고, 정체성이 되며, 사랑이 되는 과정을 담은 따뜻한 기록입니다.

이제 저도 이 책을 따라 다양한 비건 한식 요리를 만들어 보고, 가족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려 합니다. 하루하루 이 책을 펼치며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그것이 또 다른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를 기대합니다.
비건 한식의 매력을 경험해 보고 싶거나, 음식 속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