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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 없음 - '새로운 건강'을 찾아나선 어느 청년의사의 인생실험
홍종원 지음 / 잠비 / 2023년 6월
평점 :
이 책은 조금 특별한 의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병원에 찾아온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아픈 환자들이 사는 곳을 방문해서 치료하는 청년 의사의 이야기이다. 원래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학기술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합격한 곳은 의학대학 한 군데였고 수능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았던 저자는 의대에 진학한다. 진학한 의과대학 동아리에서 방문의료 봉사활동을 한 것이 지금의 방문진료 전문의원 '건강의집'을 운영하게 되는데 영향을 준 거 같다.
의대졸업 후에는 작은 지하방을 얻어 아무 조건 없이 여러 청년들과 함께 살게 된다. 이때 얻은 집의 이름도 '건강의집'으로 방문진료 의원과 이름이 같다. 굳이 따지면 이 셰어하우스 형태의 '건강의집'이 더 먼저다. 주민들과 어울려 문화예술활동 등을 하면서 '호의'와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얼마 전에 읽었던 경제적 이유와 적당히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느슨한 연대의 셰어하우스를 주장하는 일본인 니트족의 글은 나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이 건강해지고 있었다. 그럼 인상 깊었던 글 남겨 보겠다.
P. 94~95 "왜 우울증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을까. 오히려 자기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신을 몰아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울 증상을 유발한 건 아닐까?"라고 묻고 또 위로하고 싶었다.
P. 135 죽음의 '질'은 산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고독사보다는 고독생이 더 슬프다.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도 무섭지만, 그로 인해 서로를 돌보지 않고 누군가의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잊히는 것이 더 끔찍하다.
P. 147 청년들이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것도,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은 상품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그것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건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그럴싸한 포장 아닐까 ...(중략)...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이런 물음이 아닐까.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왜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하는지, 강자와 약자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할 수는 없는지,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약자가 되지 않도록 서로 도울 수는 없을지.
P. 225 꼭 혈연이나 혼인을 통해 연결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바로 곁에서 돌보는 이는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다. 돌봄은 존재의 증거 그 자체이며, 한 인간의 역사는 돌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면 '저출산, 고령화 위기'란 진단은 틀렸다. 정확한 진단은 '돌봄의 위기'다.
P. 285 계속해서 아픈 이들을 만날 작정이다. 건강을 강요하지도, 약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그들과 함께 하면서 마음이 시키는 소리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아픈 이들과 소통하다 보면, 언젠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작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남다른 행보를 걷는 의사답게 생각도 참 많은 거 같다. 이미 충분히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는 거 같다는 느낌도 든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타인의 아픔을 생각하고 사람들과 연대하여 건강하게 살고 싶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더불어 방문진료로 찾아가는 환자들은 대부분 취약계층이다. 대부분 다가가기만 해도 눈살부터 찌뿌릴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찾아가고 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종종 마주하면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으며 말이다. 왠지 무한응원하고 싶어지는 의사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