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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임재 즐거움 - 안식과 평안을 주는 예수님의 임재와 친밀한 사귐
찰스 H. 스펄전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신앙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옛날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누렸던 그 기쁨이 그 평안이 그리워 졌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싶었다.
제목이 나의 마음을 이끌었다.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
그래, 바로 이거야! 난 지금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이 필요해.
목마른 사슴이 시냇가를 찾아 헤매듯 나는 그렇게 첫장을 열게 되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
ㅇㄴ..첫부분부터 내 마음이 뜨거워 졌다.
여러분이 주님을 갈망하게 되면 주님은 그 이상으로 여러분을 갈망하신다.
예수님께 달려가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에 그분은 이미 옆에 계신다.
내가 주님을 갈급해하는 지금 이 순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이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지 모른다.
어쩜 나의 이 갈급함을 주께서 먼저 아시고 이 책으로 내 손을 인도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딸아 이 책이야. 이 책을 읽고 나의 임재에 빠져 다시 기쁨을 회복하렴'
주님의 임재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주님과 교제해야 한다.
우리가 연예할 때 만나기만 하면 아무 이유없이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아니 생각하기만 해도 그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
그렇듯 우리도 주님과 연예를 하듯 교제를 해야 한다.
주님의 임재 즐거움에 누리기 위한 그 첫번째는 바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욕심을 내서 구제주의 끝없는 충만함을 더 많이 누려야 한다.
성도가 예수님을 완전히 확신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사귐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님을 완전히 확신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사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나의 눈속에 띄용하고 뛰쳐 들어왔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확신하고 있는가? 나는 그 분을 즐거워 하고 있는가?
그것이 사귐의 첫걸음이다.
예수님의 어떤 부분을 확신해야 하는 것이지? 멀 확신하라는 것이지?
하나님이 은혜주셔도 얼마 못가 넘어지는 나약한 나에게..멀 확신하라는 걸까 ..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를 그린 아펠레스는 알렉산더를 그릴 때
손가락으로 볼의 상처를 가리게 해 그림에 드러나지 않게 했다.
그분은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아스라엘의 반역을"(민23:21) 보시지 않기 때문에
허물 많은 인간의 자식들과 교제할 수 있다.
어흑 ㅠ ㅁ ㅠ 책을 읽으며 드는 나의 의문들에 책이 대답해주고 있었다.
마치 책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이미 주님은 알고 계신다.
그런 나의 나약함을 한 손으로 가리시고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주님이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사43:1)
이 말씀 한 구절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 때문에 찰스 스펄전이란 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뭐든지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속에 빠져 나또한 성경을 읽을 때는 한 구절 한구절 깊이 묵상하기 보다는 재빨리 읽기 위한 목적으로 쉭쉭 지나치듯 읽어내렸다.
그런데 이분은 한 섹션마다 말씀도 그리 길지 않다.
많아야 3~4구절을 가지고 몇십장을 써내려 가셨다.
나의 말씀읽기에 대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 책을 계기로
나의 말씀을 보는 시각이 좀 더 성숙해진거 같다.
주님이 나를 구속하셨다.
주님의 사랑스런 독생자 아들 예수를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로 내놓으신 주께서
그 아들의 죽음으로 나를 구속하셨다.
내가 너를 구속했다. 나는 이미 네가 죄 때문에 길을 잃은 미로에서 너를 이끌어 내었다.
그런즉 시험의 그물망을 벗어나고, 시련의 미로를 통과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할 것이다.(사42:16)
주께서 나를 구속하셨기에 나의 가는 길을 인도하신다.
주님의 선한 계획하심에 따라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
나는 그저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허락하신 이상 일부가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신 사실과 예수님의 보혈 덕분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핏자국으로 인해 우리는 두려움을 넉넉히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버림을 받을 수 있을까?
구속자가 아주 큰 값을 치르셨기에 우리는 무시될 수 없다.
그러므로 확신을 갖고 행진하면서 구속자가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그저 제목을 보고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여겼던
나의 생각을 빗나가 책은 내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시선과 마음을 깨닫게 하였다.
주님의 즐거움을 깨닫기 이전에 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나 보다.
하기야 연예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더 알아가지 않은가!
그처럼 나도 주님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선 주님을 아는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시 55:22).
짐을 지고 있다면 주님께 맡기라. 그 짐을 직접 짊어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의 실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모든 염려를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이 조용히 배의 고물로 가셔서 베개를 베고 주무신 것처럼 말이다.(막4:38~39)
흑.. 생각해보니 주님과의 즐거운 교제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
현실에 대해 내가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부터였던거 같다.
주님이 나를 구속하셔서 나를 선한길로 인도하시고 모든것을 풍성히 채우시며
나의 짐을 덜어주겠노라고 나의 짐을 달라고 하시는데
내가 그 짐을 지려고 하다보니 지쳐서 그분의 임재 즐거움을 놓쳤던거 같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믿음과 평안은 함께 간다. 믿기만 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그 분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 자비와 기쁨과 빛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언제나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을 따른다.(마 9:29)
현실에 대해 근심하고 걱정하는 그 마음을 좀 더 들여다 보면
그건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현실을 두려워 하는 주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네.. 하나님... 이토록 주께서 저를 보살피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두려워합니까!?
믿음없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ㅠ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마음을 깨달으니 내마음에 먼가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밀려왔다.
이젠 주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얼른 만나서 주님의 임재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어졌다.
그들은 읽고, 노래하고, 무릎꿇고, 듣는 것에 만족한다.
껍데기에 만족함으로써 복된 영적 알맹이,
즉 진정한 "골수와 기름진 것"(시 63:5)을 전혀 알지 못한다.
어느 교회를 둘러보더라도 대부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수님을 밀면서도 만지는 법이 없다.
그들은 찾아오지만 예수님과는 접촉하지 않는다.
ㅇㄴ..저 모습은 예전의 내모습인거 같다.
말씀을 읽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 것에 만족해 하던 내 모습.
그것은 어디가지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그 이전에 있는 주님과의 접촉을 더 갈급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눅8:46)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여러분은 홀로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것 자체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지기 전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예배에 참석해서도 설교나 기타 순서를 듣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 다가가서 만지기 전까지 만족하지 말라.
주님께 손을 뻗어야 한다. 그 여인처럼 주님의 그 옷자락을 잡아야 한다.
이전의 그 즐거움은 과거이다. 그 즐거움을 현재에도 누려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껍데기에 연연해하지 말고
그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옷자락을 잡아 주님을 만져야 한다.
이 책의 각 세션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
그 말씀들이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춰져서
읽고 난 뒤에는 나의 이런 마음과 같은 큰 흐름을 형성하게 해준다.
갈급함으로 메마른 내 마음에 주님의 진리의 말씀들이 비가 되어
내 마음을 즐거움으로 흠뻑 적신다.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에 빠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구속하신 그 분의 마음을 가슴깊이 느끼며
껍데기(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의 기쁨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 지금 이 순간 손을 뻗어 주님을 만져라.
주님과 접촉하라. 그러면 그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