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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ㅣ 모두를 위한 그림책 92
김혜원 지음 / 책빛 / 2025년 6월
평점 :

아주 새까만 배경에 활활 타오르는 불과 그 불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불멍을 하고 있다기에는 불이 꽤나 크고, 꽤나 가까이에 있으며, 꽤나 불편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있어서 불멍의 여유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어요. 그렇다면 뭘까? 궁금한 마음에 그림책을 얼른 열어봅니다.

면지에는 더 크고 거센 불길이 보여요. 그림책 전반에서 배경과 불의 색이 대비되어 보여서 그런지 마치 불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으로 그림책을 보게 되었답니다. 강렬한 그림만큼이나 꽤나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될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었죠.

본문을 펼쳐 만난 첫 장면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 깜짝 놀랐어요. 불이 활활 타오르던 표지, 면지와는 다르게 평온하고 고요해 보이는 집안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해서 그런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빨래 건조대, 장난감, 육아용품 정리함 등 육아를 하고 있는, 해본 적이 있는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익숙한 풍경에 찬찬히 살펴보게 됩니다. 한쪽에서 팔베개를 하고 자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아이 엄마 같아요. 나도 이러고 졸고 있겠구나 싶게 그 속에서 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웃음도 나고요. 그러다가 한쪽에서 작게 피어나기 시작한 불꽃에서 시선이 멈춥니다.

첫 장면에서는 분명히 작은 불꽃이었는데, 불길이 점점 번지는 모습에 당황했어요. 하필이면 빨래 건조대 쪽으로 불이 번지고 있어서 초조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어쩌지? 빨래 건조대 앞에 누워있는 아이 엄마를 깨워야 하는건 아닌지 싶었어요. 다급한 마음에 페이지를 넘겼죠.

그런데 세상에, 불길이 형태를 띄더니 아이 엄마를 현관쪽으로 끌고 가며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는 듯한 몸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눈치 채셨겠지만, 그 불꽃은 바로 아이였습니다. 어찌나 활활 타오르는지 그림 속 불꽃은 엄마보다도 더 크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이가 바깥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아장아장 걸으며 돌아다니기를 좋아할 때, 저희집 첫째 어린이도 저렇게 현관에서 저를 불렀어요. 마치 영사기를 돌리듯 머릿속에 그때의 모습이 빠르게 떠올랐답니다. 내복바람으로 현관에서 자기 신발을 들고는 자기는 나갈 준비가 다 되었다며 불러대는 통에 매일매일이 참 곤란하고 마음이 바빴던 기억이 나요. 겨울이었고, 매일매일 씻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시절이었죠.

그렇게 아이 손에 이끌려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아이는.. 정말 이렇게 날아다녔어요. 아이는 한곳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었고, 저는 어디에서든 불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마치 아이폰으로 인물 사진을 찍을 때처럼 온통 아이가 돋보여 보이는 게 당연했죠. 정말, 정말 이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아름답고 어여쁘지만 온통 시선을 두어야하고 앞을 알기 어려웠어요.

산책 중인 개라도 지나갈라치면 아이를 더 붙잡아야 했어요. 꼭 강아지만한 몸집을 가진 아이가 정말 친구라도 만난 듯이 반가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워서 뒤로 숨기도 했거든요. 저희집 둘째 어린이는 아직도 길에서 개를 만나기만 하면 꼬리를 흔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궁둥이를 씰룩거리면서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아서 '강아지한테 짖으면 안돼. 강아지 놀래키면 안돼.'하고 말한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온통 아이의 흔적이 남는 듯 했습니다. 아이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불이 지나간 자리가 그렇듯 하루의 끝에 뒤를 돌아보면 재가 되어 남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어요. 체력 뿐이었을까요. 정말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온 마음을 다해 보내는 날들이었다고 고백해 봅니다.

가끔은요. 이렇게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불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이들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정말 불이 가진 것 같은 생명력이 느껴지거든요. 보고 있는 것 자체로도 에너지가 느껴지고, 살아있다는 건 이런거구나 싶은 활력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이 생명체가 생겨나게 된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불이 그렇듯, 그가 가진 힘이 너무나 대단해서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매일매일 기대하고 환희를 느끼기만 한다고 말하는건 아무래도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요. 두려움, 책임감,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으로 피로해질 때가 누구에게든 있을 거예요. 육아를 할 때면 대개 주양육자가 되는 엄마는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심정을 느끼기도 한다고 하죠. 먹고, 자고, 입고, 심지어 싸는 것까지 내맘대로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니까요.
그렇다고 활활 타오르는, 이 눈부신 불길에 등을 돌릴 수는 없었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불은 정말 다양한 빛을 가지고 있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그 불길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손을 뻗어 품에 안고 번쩍 일어나 꼬옥 안아줍니다.

우리가 매일, 이렇게 서로를 품에 안는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일임을 우리가 서로 알아요.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불꽃 같은 아이들이지만, 자칫 나를 삼킬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불꽃을 품에 꼬옥 안을 수 있는 마음도 결국은, 내 안에 있다고 믿어요. 맞아요, 부모는 불길을 품에 안을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사실 이 그림책을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처음 봤을 때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 때였어요. 울컥하는 마음에 급하게 책장을 닫았던 것 같기도 해요. 조금 지나고 나니 이제야 그 마음이 살짝 다시 보였어요. 얼마 후 다시 그림책을 보는데, 타오르는 불꽃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의연하게 불꽃을 품에 안아 일어나는 모습이 다르게 느껴졌어요. 이전에는 불꽃이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해보였던 그림이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안았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포근함이라는 게 이렇게 힘이 세다고 느껴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요.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 그게 바로 열정이죠. 한 우주를 품에 안고 키운다는 것도 바로 그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하루하루 온 마음을 다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들에게 이 그림책을 전하고 싶습니다.
🌟 육아에 지쳐 몸과 마음이 힘든 주변의 엄마와 아빠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좋은 그림책으로 추천합니다.
※ 책빛 출판사의 '빛나는 독자'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