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세월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 드라마중에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최수종과 김희애가 각각 쌍둥이로 나오고 최수종이 좋아하는 여인에 채시라, 후에 김희애가 만나는 남자는 한석규였다. 다른 배우들은 몰라도 이 당시에 한석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 드라마가 유명해진건 극중 이 아들딸들의 아버지가 불렀던 "홍도야~ 우지마라, 아!! 오빠가 있~~다"라는 노래와 잊혀지지 않는 막내, "종말이"때문이기도 했다.

시대상 50,60년대만해도 여전히 아들이 귀하다고 여기던 때라서 드라마도 다를건 없었다. 아들에게는 물심양면으로 학업이며 과외며 이것저것 다 지원해줬지만 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쌍둥이들중에 딸이 머리가 더 좋았고, 하고자 하는 방향은 확고했지만 아들은 별로 욕심도 없고 단순히 부모가 기대하기에 한다는 식이었다. 후에 딸은 집을 뛰쳐나와 산전수전 고생을 다 겪지만 결국에는 성공한다는 얘기다. 이 딸이 너무 고생을 많이해서 같이 울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책은 세월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목차가 연도로 되어있고, 1988년부터 시작한다.

여자들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한가족이지만 가족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령은 엄마와 오빠와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어느 날 엄마가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 엄마는 더이상 살 기력이 없으며, 마지막까지도 "내 아들, 불쌍해서 어떡하니.. 보고싶구나."를 입에 달았다.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딸은 울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아빠의 본부인이 찾아온다. 미령을 데려가겠다며 오빠는 알아서 하라고 한다. 미령을 데려온 명옥은 정신나간 고모를 돌보는 일을 맡긴다.  식구긴 하지만 누구하나 살갑게 대해주는 사람도, 정다운 대화가 오가는 일도 없다. 돈이 전부이던 그 시절에 책은 돈으로 흥하고 돈으로 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중 미령이 만났던 신비한 고모님. 돈, 그리고 자신밖에 모르던 명옥. 공부는 잘했지만 최씨 집안에만 내려온다는 이상한 내림을 물려받은 신혜. 집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아버지.

 

"그녀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약간은 기괴하지만 결국은 서글픈 사연, 그 기괴한 사연이 모이고 모여 세월을 이룬다. 하지만 그 세월 속에 '그녀'는 없다."라고 되어있다.

주인공인 미령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것 같으나, 정작 여기서 세월안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은 신혜가 아닌가싶다. 이상한 내력을 물려받아 사람들에겐 말도 못하고 결국은 정신을 놓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엄마.. 나는 어디에 있어?"라는 물음으로 말문을 여는 신혜. 네 여자의 이야기가 엉키지만 그 속에 신혜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아주 적다. 옛날 드라마를 본것 같았다. 지금 우리가 자주 접하고 있는 청춘극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의 냄새와 얘기가 녹아들어 있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검열을 꼼꼼이 하지 못해서인지 발견되는 오타는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했다. 내가 찾은 것만도 네댓개는 된다. 이름이 바뀐게 대부분인데 뭐야~ 이러면서 다시 읽어야했다. 연도는 바뀌어도 사람들의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가 지나건 인간들은 똑같다. 자기들밖에 모르며,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깎아내리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사는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접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