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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삶은 무척 빨리 지나가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그 사건이 내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1년 전, 한 달 전 심지어 어제 있었던 일조차 대부분은 이미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런 내게 내가 겪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45년생 문학평론가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는 황현산 선생이 그간 쓴 칼럼과 평론 등을 한데 엮은 책으로,
특정 사진과 영화, 만화 등에 대한 평론부터, 현재까지 적을 두고 있는 대학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
세월호나 강정마을, 사대강 등 사회적 이야기 등이 한데 얽혀 있다.
집필 시기도, 글의 주제나 방향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황현산이 쓴 글'이므로 한데 엮었다.
저자의 이름과 필력을 믿고 출판한, 나이브한 편집 및 구성방식이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어느 쪽이든 펼쳐서 마음 닿는 대로 읽으면 그만인 책이다.
이 보잘것없는 구성인 책임에도 저자의 글만은 빛이 났다.
특히 45년생 황현산 선생이 겪은 과거의 한국에 관한 이야기들은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었다.
아직도 본인이 고향 섬에서 겪은 기준을 삶의 잣대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며, 그 고향집 방마다 있다고 믿고 살던 지방신들 이야기,
근대화 이전 서울 어느 달동네에 관한 묘사까지, 내가 미처 겪어보지 못한 당신의 과거를 묘사해줄 때마다 그의 글에 좀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얼마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강산과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큰지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앞서 삶은 무척 빨리 지나가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라 했다.
그러나 이 문장이 사실이라 해도,
우리가 지금 잊고 지내는 것들이 정말 잊어도 상관없는 것들인가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특정 사건을 잊을 것인지 아니면 기억할 것인지 선별하는 당사자는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발전에 떠밀려, 사회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기억하고
특정 개인의 소소한 기억들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리진 않았나.
'경제가 살아야 한다'는 말 한마디로
개인의 소소한 삶은 '잊어야 할 과거'로 치부해버린 것은 아닌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