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의 진심, 살아남은 자의 비밀
란즈커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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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가장 최근에, 권력의 최전선에 서 있던 이가

한순간 고꾸라지는 모습을 경험했다.

 

검찰조사를 나온 최순실은 억울하다고 하고, “3대를 멸하겠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민주주의를 들먹였다.

그가 생각하는 ‘3는 아마 자신과 자신의 딸, 그리고 그 딸의 자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

‘(남들은 어찌될지 알 것 없고 일단) 내 꿈만은 이루어지는 나라였을 것이다.

그런 이가 모든 능력을 잃고 추궁당하는 입장에 처했으니 억울하다고 느낄 만하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를 보았을 때,

꼭두각시 박근혜와 그를 조종한 최순실은

그들의 권력이 3대를 지나 천년만년 가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늘 권력은 영원한 것이 아님을 말해왔다.

역사에서 박근혜, 최순실과 정 반대의 길을 걸어

마지막까지 풍요로움을 누리다 간 인물이 있다.

멀쩡한 황제도 하루아침에 비명횡사하는 처절한 시대인 510국에

30여 년 동안 고위관직을 지낸 풍도다.

 

풍도는 수많은 라이벌과 자신의 리더까지 비정한 칼끝 위에 스러지는 마당에

자신만은 안정과 평화를 누려 스스로 길게 즐거움을 누린다는 의미의

장락長樂 선생이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참모의 진심, 살아남은 자의 비밀은>은 그러한 풍도의 일대기를 통해

참모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위험에 처하지 않는 방안,

어리석고 포악한 리더를 모시는 방안,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방안 등을 모색한다.

 

책 속의 풍도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의 처신이다. 그는 정도를 지킬 줄 알았다.

또한 욱하며 성질을 내거나, 상대의 비난에 휘말리지 않았다.

권력과 재물 앞에 눈이 멀지 않았고, 가진 것을 나눌 줄 알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그의 평판이 되었다.

 

두 번째는 참모로서의 역할이다.

그는 열한 명의 황제를 보좌한 바가 있다.

어떤 황제는 글자 하나 모르는 무식한 이였고,

또 어떤 황제는 쉽게 믿음을 주지 않는 이였다.

그는 황제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게 설득하는 법을 알았다.

명예욕이 있는 야율덕광 황제에게는 권위를 부여하고,

욕심만 많고 어리석은 리더인 이종가를 만났을 때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자중할 줄 알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이 비로소 그를 30여 년 긴 즐거움을 누리는 장락 선생으로 만들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풍도를 알았다면

그와 같은 정도를 넘어서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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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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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의 큰집은 워낙 대가족인지라 다 모이니 30여 명이 넘었다.
당시 우리 시부모님은 인자한 표정으로 "우리처럼 온 가족이 전부 모이는 화목한 집도 없을 거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딸은 아직 오지도 못했는데 왜 온 가족이 모였다고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시집 간 딸들은 모두 당신들의 시댁 부엌에서 차롓상을 만들고 있음을 아니까.
그리고 딸이 없는 자리는 나를 비롯한 며느리들이 메꾸었다.
부엌은 오롯이 여자들 차지였고, 남자들은 안방에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우리가 내오는 음식이 오기만 기다렸다.
열 명도 넘는 남자어른이 내가 밥을 멱어줄 때까지 입 벌리고 기다리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생각 역시 속으로만 했다.

어른들은 첫 명절을 맞는 나를 배려하느라 안방에 편히 앉아 있으라 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가시방석이었다.
안방에 있는 며느리는 나 하나뿐이었고, 형님들은 부엌과 안방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했다.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형님들 사이에도 끼지 못하고, 그렇다고 방에 들어가 편히 앉아 있지도 못했다.
엉덩이를 떼었다 붙였다만 반복하다 결국 자진해서 부엌에 들어갔다.
눈치껏 밥을 푸다가, 반찬을 옮겨 담다가, 간식거리를 안방에 내놓다가, 할 일을 찾지 못하면 한쪽 벽에 서 있다가 했다.

상은 차롓상, 아버지들 상, 어머니들 상, 남편들 상, 자식들 상까지 다 내놓은 뒤
그들이 먹은 그릇을 정리해 부엌에 갖다놓고, 후식까지 챙긴 뒤,
거실에 있던 자식들 상을 정리한 다음에야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다섯 번째 식탁 끝에서 그날 처음 본 다섯 형님과 함께 밥을 먹었다.
남편은 두 번째 식탁에서 이미 밥을 다 먹고 후식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얄밉고 싫었지만 이 또한 말할 수 없었다. 모든 며느리의 남편들이 안방에서 그렇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정갈하게 밥과 반찬을 담아도, 반찬은 꼭 남는다.
자녀들의 밥상도 그랬다. 며느리들은 그 밥상의 반찬이 아까웠다.
그래서 남은 반찬에 모자란 반찬만 몇 가지 추가해 자녀들이 남긴 반찬과 함께 밥을 먹었다.
'나 손님인 줄 알았는데 머슴인 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남편이 중간에 몰래 나를 데리고 나와 이층에서 쉬게 해주었고,
형님들이 내가 오기 전에 모든 일을 다 해놓아 내 일의 절대량이 한없이 작았고,
어머님이 우리 며느리 먹여야 한다며 밥상에 조기를 가져다가 식탁 앞에 놓아준 것 등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를 귀하게 대해준다고 고백했던 남편 말이 자꾸 떠오르고
우리 식구라며 안아주던 시부모님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지금껏 이런 생활을 견딘 건가'라는 생각까지 이어져
머릿속이 복잡해질 즈음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두어 개 깨트렸다

가장 암울한 건 어디에 화를 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만 빼고 큰댁의 모든 상황이 너무도 평화로워서 그야말로 큰 족쇄에 갇힌 느낌이었다.
딸이 결혼하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이 세상 모든 딸들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명절을 넘기고, 이미 첫 명절을 지낸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들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명절을 보냈음을 알았다.

지금 내 안의 나를 위로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에 <82년생 김지영>을 손에 집었다.


주인공 김지영은 우리나라 30대 여성의 보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여기 나오는 모든 경험은 통계상 대한민국 여성이 가장 많이 겪은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저자는 82년생에게 가장 많은 이름인 '김지영'을 주인공으로 상정하고,

여자들이 가장 많이 겪는 일상을 어릴 때부터 차례대로 살핀다.

그러므로 이 인물과 상황이 분명 허구임에도 나와 내 주변 여성들의 경험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어딘가에 책 속의 김지영 씨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누군가의 딸에서, 성적 대상으로, 육아독박자로, 마지막으로 맘충으로 계속 시선이 옮겨가는 그녀의 일생은

나의 인생 패턴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울 때마다 같이 울었고, 그녀가 억울할 때마다 함께 억울해졌다.

그리고 그녀처럼 살기 싫어 자꾸만 탈주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내 욕망을 말하면 이기적인 여자가 되고, 아이를 위하는 삶을 말하면 맘충이 되는 이 아이러니에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으니, 내 선택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경험과 삶, 모멸감을 물려줄 수밖에 없다면 거부밖에 답이 없다.

그리고 세상 모든 김지영에게 위로를 건네고 연대를 할 것이다.

세상 모든 김지영과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일수록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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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의 진심, 살아남은 자의 비밀
란즈커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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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에 살아남은 자가 진짜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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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합니다 - 무엇을 시작하든 끝장을 보는 사람, 이재명 첫 자전적 에세이
이재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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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좋네요 ˝이재명은 합니다˝ 공약 이행률과 신뢰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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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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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척 빨리 지나가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그 사건이 내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1년 전, 한 달 전 심지어 어제 있었던 일조차 대부분은 이미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런 내게 내가 겪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45년생 문학평론가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는 황현산 선생이 그간 쓴 칼럼과 평론 등을 한데 엮은 책으로,

특정 사진과 영화, 만화 등에 대한 평론부터, 현재까지 적을 두고 있는 대학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

세월호나 강정마을, 사대강 등 사회적 이야기 등이 한데 얽혀 있다.

집필 시기도, 글의 주제나 방향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황현산이 쓴 글'이므로 한데 엮었다.

저자의 이름과 필력을 믿고 출판한, 나이브한 편집 및 구성방식이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어느 쪽이든 펼쳐서 마음 닿는 대로 읽으면 그만인 책이다.


이 보잘것없는 구성인 책임에도 저자의 글만은 빛이 났다.

특히 45년생 황현산 선생이 겪은 과거의 한국에 관한 이야기들은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었다.


아직도 본인이 고향 섬에서 겪은 기준을 삶의 잣대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며, 그 고향집 방마다 있다고 믿고 살던 지방신들 이야기,

근대화 이전 서울 어느 달동네에 관한 묘사까지, 내가 미처 겪어보지 못한 당신의 과거를 묘사해줄 때마다 그의 글에 좀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얼마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강산과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큰지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앞서 삶은 무척 빨리 지나가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라 했다.

그러나 이 문장이 사실이라 해도,

우리가 지금 잊고 지내는 것들이 정말 잊어도 상관없는 것들인가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특정 사건을 잊을 것인지 아니면 기억할 것인지 선별하는 당사자는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발전에 떠밀려, 사회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기억하고

특정 개인의 소소한 기억들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리진 않았나.

'경제가 살아야 한다'는 말 한마디로

개인의 소소한 삶은 '잊어야 할 과거'로 치부해버린 것은 아닌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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