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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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황정은 작가의 소설은 불편하다. <계속해보겠습니다>부터 <백의 그림자>, 그리고 이번에 접한 <아무도 아닌>까지, 그가 보여주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연민이 느껴지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는 '왜 저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분노를 가져다준다. 이번에 그의 신간 <아무도 아닌>을 접하면서, 왜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내게 불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좀더 깊이 고민해보았다. 단편 소설 모음이다보니 서로 비슷한 결을 가진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했고, 그러한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면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기에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는 데 좀더 도움이 되었다.

 

 

그가 보여주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내가 외면했거나, 미처 관심 가지지 못한 어떤 이들의 감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어머니를 잃은 슬픔보다 어머니처럼 아프게 되었을 때 인간다운 삶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함을 인지하며 한 이불 매장에서 웃음을 파는 나(<웃는 인간>), 스러져가는 동네를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써 결국 좀더 나은, 그러나 영원한 내 것은 아니므로 얼마 뒤에는 밀려날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이사한 여자(<누가>), 궁상맞게 사는 부모를 둔 제희와, 그 가족을 바라보는 제희의 여자친구 등(<상류엔 맹금류>), <아무도 아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내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그런 감정을 수시로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지금'에서 벗어나려 노력해도 제자리인 기분,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어떤 뻘 같은 곳에 있는 듯했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그러한 감정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수시로 느끼는 그 어떤 두려움과 비슷하다. 한 달에 한 번 받는 월급이 너무 사소해보일 때, 내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부대끼는 나날이 지겨울 때,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갑자기 아플 때, 우리는 지금의 평범한 삶이 나사 하나만 어긋나도 멈추어버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그간 벌어놓은 돈과, 누군가와 함께해온 우정 같은 것들이 사실 허상일 수도 있음을 문득 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러한 순간을 외면하지만, 황정은 작가는 그 감각들을 잘 포착해 글로 남겨놓는 데 탁월하다. 외면하고 싶은 순간을 자꾸만 불러세우니, 읽는 이가 불편을 느낄 수밖에.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직시하는 것은 늘 필요하다.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글은 내가 외면하는 어떠한 순간을 기억해내게끔 돕기도 한다. <백의 그림자> 속 상인들이 그랬고, <계속해보겠습니다>의 애자와 소라, 나기, 나나의 삶이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아보이는 삶일지 모르나 그들에게는 애써 살아가야 할 소중한 인생이었다. 황정은 작가가 소설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내가 외면하는 어떤 순간에도 애써 살아가는 소중한 인생이 있다고, 세상의 모든 사소한 인생이 얼마나 위대한지 당신은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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