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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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내게 '닮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함께 살면서, 그가 저질러놓은 일을 수습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일에 치였고, 집안일과 바깥일 모두 소화하느라 당신의 두 자식을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엄마는 '남자를 잘못 만난 탓'이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처음 만난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줄 알고 결혼했다는 말, 너는 남자를 많이 만나보고 꼭 그 가운데 가장 나은 남자를 고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했다. "능력 되면 혼자 살아"라는 말도 엄마의 신세한탄마다 듣는 말 가운데 하나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는 아빠 같은 남자는 안 만날 거야"는 것이 내 연애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남자를 많이 만나라'는 충고만 했지, '이러이러한 남자를 만나라' 또는 '좋은 남자와 좋지 않은 남자를 구분하는 법' 같은 것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남자에 대한 표본은 아빠 하나밖에 없었을 테니,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방법이 없었으리라.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부딪히며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대면조차 하지 않을 남자들을 만났던 흑역사가 있다. 그들은 내게 '착한 여자'라는 프레임을 씌웠고(너는 사치하는 다른 여자애들과 달라서 좋아, 나는 네가 소박해서 좋아, 네가 엄마 같아서 좋아 등), 자신의 사랑을 강요 또는 협박하는 것으로 이별을 유예했으며(나는 너 없으면 안 돼, 죽을지도 몰라,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사니 등), 나를 악세서리 취급했다(여자가 예뻐야 남자 기가 살아, 구두 신고 나와, 난 긴생머리가 좋으니 머리 길러라, 존댓말을 해라, 제모를 해라 등).

당시에는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그들의 말을 따랐다. 요즘 유행하는 '김치녀 된장녀' 프레임에 소속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자신의 말을 따르면 사랑을 준다 했으니, 물물교환 같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이 물물교환인가. 내가 A를 주어야만 B를 준다니, 요즘 유행하는 '가성비' 같은 건가. 심지어 저 수많은 강요 안에 내 의지는 하나도 없다. 그때 내가 페미니즘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엿이나 먹으라고 한방 날려주지 않았을까.


 



홍승은의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는 내내 나의 지난날 흑역사가 떠올랐다. 지금은 페미니스트라 말하는 홍승은조차 나와 비슷한 과거가 있었다. 그 역시 많은 연애에서 을로 지냈고, 남성 집단 사이에서 꽃 또는 엄마 역할을 강요받았으며, 목소리를 지우라고 강요받았다. 어쩌면 이 이야기들은 대한민국 대다수 여자들과 공통된 사항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책을 읽으며 그와 같이 분노하고, 또 같이 슬퍼했다.

책에 따르면 한 개그맨이 "남자들은 생각하고, 말하고, 설치는 여자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가 말한 대로 생각을 지우고, 말하기를 멈추고, 설치지 않는 여자가 늘어날수록 불편해지는 자는 누구인가? 여자다. 반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설치는 여자가 늘어날수록 자유로워지는 자는 누구인가? 이 또한 여자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생각하고, 말하고, 설쳐야 한다. 계속 세상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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