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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 삼거리 작업실 - 클라이언트의 거친 생각과 디자이너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아트디렉터
홍동원 지음 / 동녘 / 2015년 10월
평점 :
<오밤중 삼거리 작업실>은 디자이너 홍동원이 어떻게
미지의 세계였던 디자인 영역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끔 했는지, 그 역사를 보여준다.
그를 이 자리에 있게끔 한 수많은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흔히 '예술은 영감이 와야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식을 반영한 문학이나 방송은 예술가를
한창 술에 빠져 있거나, 노름 등으로 재산을 탕진하거나, 돈에 대한 개념이 아예 잡혀 있지 않은 등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할 남다른 행보를 보이는 사람들로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실제 예술가들도 방송에서 표현되는 갈지 자 행보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까?
<오밤중 삼거리 작업실>을 비추어보았을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NO일 확률이 높다.

천재 예술가를 희화화해 표현한 <내 딸 금사월>
'쉽게 가려 하지 마라, 도전이 주는 긴장을 즐겨라.'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단 두 마디로 축약된다.
책에 따르면 홍동원 디자이너가 보여주는 예술은 갈지 자 행보가 아닌 '발품'과 '도전정신'에서 나온다.
그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요"라고 투덜대는 신입 디자이너의 궁둥짝을 쫙 차며 "당장 필드로 나가라"고 한다.
인쇄를 모르겠으면 인쇄소를 찾아가고, 종이를 모르겠으면 제지업체를 찾아가고,
오설록 간판을 디자인하기로 했으면 제주도로 가고,
신문 판면을 디자인하기로 했으면 하루에 종합일간지 6개, 스포츠신문 2개, 경제신문 2개, 24시간 뉴스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쉬지 않고 손을 놀려 머릿속에서 날아가려 하는 생각들을 붙잡아 스케치해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영감은 온다.
또한 이미 거의 완성된 디자인도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과감하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처음 해보는 작업에 겁먹지 않고 나서는 등
저자는 도전할 때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긴장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책에 담긴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어느 분야든 대가는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모든 디자인 작업이 매번 쉽게 풀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듯 아이디어는 샘솟지 않는다. 무식한 돌쇠처럼 열심히 몸을 굴리고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생각해야 한줄기 아이디어가 찔끔 떠오를 뿐이다."
"이제는 상품을 잘 만들기만 하면 잘 팔린다는 말은 옛날이야기다. 그래서 마케팅이란 말이 득세하며 상품을 구매하는 좀더 정확한 세대와 계층이 자리 잡아가는 것이다. 책의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예쁘게 그리고 멋있게 하면 된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타깃을 정해야 한다."
"세상 그 어디에도 새로운 것은 없다. 단지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뿐이다. 그게 디자이너의 일이다."
"어떤 디자인을 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 생각을 잣대 삼아 끊임없이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 생각과 정리는 디자이너의 몫이지 컴퓨터가 해주지 않는다."
"어렵다고? 모른다고? 모니터 그만 보라. 인쇄소 달려가서 인쇄된 종이를 직접 접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