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유동하는 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한상석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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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행복한 인생을 꿈꾸지만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 세상은 불투명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붕괴된 공동체는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고, 나약해진 국가는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못하며,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부모님도 믿을 수 없고(부모도 자식을 믿을 수 없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데다 나를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회사에게 내 미래를 맡길 수도 없다. 후배들은 자꾸 내 자리를 위협하고, 나는 언제 떠밀려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질지 모른다. 미래도 사람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니,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외치며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각자도생을 위해 사람들은 타인을 경계해 아파트 벽을 성벽처럼 높게 쌓고 그 안에 숨어 지낸다. 보이지 않는 위험을 없애기 위해 복권을 사고, 보험에 들며, 운동을 한다. 이렇다보니 호황하는 건 자기계발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질적인 해답일까.

 

 

"당신은 더 이상 세상을 더욱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진지한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어떻게든 혼자서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이란 없다. 자신이 가까스로 마련한 그나마 좀더 살기 좋은 장소에서조차 말이다. 불안은 그곳에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행운'은 '불운'을 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자도생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모든 실패는 개인의 몫이다. 개인의 불안을 먹고사는 기업, 국가, 엘리트 들은 그 책임에서 면죄부를 받는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지 모른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그저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이제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 내 몫으로 떨어졌다. 이런 지옥에서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쩌면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 대한 해결방안을 잘못 구했는지 모른다. 수많은 변수가 난무하는 불안과 공포를 결코 개인은 대비하지 못한다. 각자도생은 잡으면 이내 흩어지는 모래알 같아서 결코 그 누구도 구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사망선고 받은 각자도생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잊힌 공동체의 부활을 기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근대 이전의 세계로, "인간 상호 간의 연대감이나 이웃 간의 유대"가 끈끈하던 그때로 말이다.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방안은 연대밖에 없다.

 

 

이 책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개인과 유동하는 시대에 대해 조망만 할 뿐, 그 어떤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현실을 직시할 뿐이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의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각자도생을 꿈꾸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 지옥임을 직시하고 타인의 손을 잡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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