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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은 “현대문명이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돌아보지 않고 주제넘게도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착각에 빠져 결국은 자신의 생존의 토대를 끊임없이 망가뜨려온 자멸적 역사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행태를 자멸적 역사 과정이라 한다면 그 행위의
정점에는 ‘원전’,
즉 핵에너지가 있다.
우리는 자멸을 담보로 에너지를 만들어 전기를 끌어
쓰는 중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과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난 뒤,
그곳을 보았던 많은 사람의 기억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사람의 증언은 동시대에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정부의 무능함과 방관,
일반인들의 무지와 혼란,
전쟁보다 끔찍한 피폭현장 등,
체르노빌을 겪은 사람들은 끝날 줄 모르는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편이 가볍게 껴안기만 해도 장애 아이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얼어버리는 여자,
방공호를 만들고 발전소에 모래를 뿌리는 흉내를 내며
“나는 방사선이다!”라고 외치는 놀이를 즐기는 아이,
“나는 안 늙어요.
우리는 곧 다 죽어요”라고 말하는 어린 소년,
새로 산 원피스가 울타리에 껴서 찢어졌는데 숨겨놓는
죄를 지어 자신이 벌을 받는다고 말하는 소녀,
“우리는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생명체”라고 자위하는 아버지 등,
책에 나오는 보통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이 모든 끔찍한 일이 누구의 잘못인지 이 순진한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해줄 수는 있지만,
어떻게 아이들에게 세상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돌려줄까?
체르노빌 후에 어린이 그림 전시회에서 까만 봄 들판을 나는 황새 그림을
봤어요.
그리고 그 밑에 ‘황새한테는 아무도 아무것도 안 알려줬어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
바로 그게 당시 제
느낌이었어요.
시골 사람들이 제일 불쌍해요.
그들은 아이처럼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통을
당했어요.
체르노빌은 농부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에요.
100년,
1,000년 전과 같이 농부는 자연과 서로 신뢰하는
특별한 관계였지,
약탈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과학자나 배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치 성직자를 신뢰하듯
믿었어요.
그런 그들을 기만했죠.
“다 괜찮아.
무서울 거 없어.
밥 먹기 전에 손만 씻으면 돼.”
그때는
몰랐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 모두가 그 범죄에 가담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 소원이 뭔지 물어봐줘." "뭔데?" "평범한 죽음."
얼마 전 신문에 1993년 한 해 동안 벨라루스에서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20만 번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주요 원인은 체르노빌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디를 가든 그 두려움과 함께
삽니다.
소련 정부는 “소련의 원전은 사모바르(러시아 전통 주전자)보다도 안전하다.
크렘린 궁전 바로 옆 붉은광장에 세워도
된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그 순진한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믿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아끼던 옷,
음식부터 강아지,
고양이,
멧돼지,
심지어는 자신이 살던 집까지,
모든 것이 땅속에 묻혔다.
인간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생명체까지 파멸로
몰고 갔다.
원자폭탄과 다르게 핵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은 사람을 서서히
죽인다.
체르노빌 사고로 150만 명이 사망했다.
방사능 반감기는 유효 반감기가
10번 지나는 동안 지속적으로 우리 몸에서 세포들을
공격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1986년 일어난 뒤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노후되어 방사능을 막아내지 못하는 체르노빌 덮개
위에 새로 덮을 깨끗한 덮개를 만들고 있다.
아직도 핵반응은 진행 중이고 여전히 방사능은 뿜어
나오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체르노빌의 7배 규모의 사고라고 한다.
체르노빌은 한 개의 원자로만 폭발한 사고이고 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준위핵폐기물도 없었다.
반면 후쿠시마는 원자로만 해도 세 개의 노심이
완전히 녹아버렸다.
그 방사능은 지금 태평양으로 계속 유출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핵발전소를 ‘원자력 발전소’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값싼 친환경 에너지’라는 카피로 국민을 우롱한다.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라 안전하다고
속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백만 분의 일’이라는 사고 확률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칠 수 있음을 우리는 두 사례에서
똑똑히 보았다.
또한 방사능 수치에 ‘기준치’라는 건 없다.
많이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얻는 병의 종류와 정도가
심해질 뿐이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한국.
지금까지
핵사고는 발전소 개수가 많을수록,
원자력
밀집도가 높을수록 많이 일어났다.
우리는
발전소 개수 23개,
원전
밀집도 세계 1위라고 한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건이 우리와 멀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후쿠시마
사건 이후,
우리는 또
하나의 시험에 들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자멸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