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섹스 -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은하선 지음 / 동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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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600여 년을 지탱해온 유교주의는 우리 삶 곳곳에 녹아 있다. 자고로 교양 있는 성인이라면 '섹스'는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망측한 단어다. 게다가 섹스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주체가 중고등학생, 심지어 여자아이라면? '어린 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벌써부터 발랑 까져가지고... ㅉㅉ'라는 일장연설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유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섹스 라이프'를 공개한 책을 펴냈다. 책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섹스'라는 단어가 우수수 쏟아진다. 그것도 2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선천적으로 성격이 강한 사람은 피하는 편이라,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별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저자의 페이스북을 보게 되었다. 책을 출간한 이후 페북 메시지를 통해 각종 성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글에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많은 남자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녀의 다른 글을 본 적이 없어 평소 어떤 문투를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책 속에 표현되는 그녀의 글은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성적 금기를 깨보이겠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타협이 없으며 전반적으로 날카롭고 공격적이다. "언제까지 그놈들의 눈치를 보며 섹스를 할 텐가? 이타적 섹스를 멈추고, 나를 위한 이기적 섹스를 시작하자!"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글이 교양 있는 대한민국 성인 남자들께 얼마나 불편할까. 그러니 '그 입 다물라'며 각종 질 떨어지는 방법으로 그녀를 공격하는 중이리라.

 

출처: <이기적 섹스> 저자 은하선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eunhasun2?fref=ts


글은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남자들의 에피소드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여자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성에 대한 세상의 금기에 저항하기 위해 쓴 글이고, 후자는 세상에는 '정상'이라는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이토록 많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를 들여다볼 때는 내가 얼마나 내 욕망에 충실하지 못하게 살았는지 느꼈고, 후자를 읽을 때는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삶도 상상해볼 여지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섹스라이프를 들여다보면 나조차도 불편해지는 지점들이 있다. 10대의 섹스를 어떻게 볼 것인지, 스리섬을 옹호할 수 있는지 같은 주제들은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제대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 뭐라 언급하기가 어려웠다. 그녀의 글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그 글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금기를 건들였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금기와 편견을 깨뜨리며 조금씩 성장한다. 그렇게 봤을 때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섹스한 여자들을 '헤픈 년', '걸레'로 만들어온 건 남자들이다. 여성들의 유전자 속에 깊이 내재된 트라우마를 전부 걷어내기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역사가 너무 짧지 않나. 그 시간들은 깡그리 무시하고 투덜거리기만 하면 정말 답 없다. 옛 선조들이 여자들에게 '순결함'을 강조하며 쌓아온 시간의 업보를 이 시대 남자들은 온전히 물려받은 거다."


"'어른'은 결코 완벽함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책임지고 섹스를 하는 어른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섹스를 하지 말라는 말은, 어른이 되면 책임감이 저절로 생긴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책임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실체 없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로 10대들을 괴롭히기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섹스를 위한 성교육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싫은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해방이다. 섹스에 대해서 여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입을 열 때,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 때 비로소 진정한 성해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자신이 누구와 만나고 누구와 섹스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누군가는 성적 지향을 타고나는 거라 말하지만, 자기 자신도 몰랐던 욕망을 살면서 발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난 성적 지향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타고났든 바뀌었든 선택했든 간에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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