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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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트위터는 진보 논객들이 행한 데이트폭력을 폭로하는 트윗으로 뜨거웠다. 유명 진보논객으로부터 데이트폭력을 입었다는 A씨의 폭로에 힘입어 다양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각종 기사가 쏟아졌다. 이에 SNS에서도 찬반 입장이 대단했는데, 찬성 입장은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반대 입장은 남성의 권리를 옹오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대부분 피해자를 비난하는 내용들인데, "왜 그때 도망가지 못했냐"부터 시작해서 "맞을 짓을 했겠지", "3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밝히는 것으로 봐서는 뭔가 꿍꿍이가 있다" 등, 이러한 반응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1. 누구나 폭력 앞에서는 보복이 두려워 이성적인 생각을 놓치게 되고, 2. 무슨 짓을 하더라도 맞아야 할 사람은 없으며, 3. 3년이 지나서 밝히는 꿍꿍이가 아니라 3년 동안 그 폭력의 기억에 고통받고 힘들어하다가 이제야 입을 열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3년 동안 해결된 게 없으니까.


우리는 왜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감싸주고 옹호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은 가벼운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문장에 들어간 함의는 남성성의 권력에 관한 이야기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말이야.."로 시작하는. 여자는 잘 모르니 알려줘야 하는 존재로 취급되는 생각에 관한 비판이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 군림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맨즈플레인"이라고 한다.


맨즈플레인의 극단적, 폭력적인 방법이 데이트폭력, 강간 등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미국에서는 6.2분에 한 번씩 경찰에 강간신고가 접수되고, 여자 5명 가운데 한 명은 강간을 당한다고 이야기한다. 강간의 심리 또한 "내가 소유하고 싶다 생각하면 소유해야 하며 너는 거절할 권리가 없다"는 말을 담고 있는 폭력이다. 데이트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여자는 수시로 남성의 권력남용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앞서 이야기한 데이트폭력의 SNS 반응과 마찬가지로 "나는 안 그런다. 모든 남자를 하나로 취급하지 말라", "이는 남성 역차별이다"라는 류의 반응이 나온다.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예요?"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며 산다. 때로는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제니추라는 여성 트위터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남성의 '선긋기' 반응에 해시테그 #여자들은다겪는다 로 대응한다. 이 해시테그는 전 세계 50만 건이 작성되는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페미니즘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맨즈플레인이나 강간, 데이트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젠더 문제이지만, 이는 동등하게 살고 싶다는 한 사람의 외침이기도 하다. 가르쳐야 하고 군림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 달라는 것이다. 한 모 씨의 데이트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여성도 데이트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말에 힘입은 다른 여성도 자신의 경험을 폭로하며 "앞선 두분의 발언으로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두 분과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혹자는 맨즈플레인과 데이트폭력, 강간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맨즈플레인이든 성폭력이든, 그 안에 들어 있는 함의는 같다. "가만히 있으라. 내 말을 들으라." 이 책이 맨즈플레인과 성폭력을 한 권 안에서 이야기하는 이유다.


책에는 폭력을 당하는 여자들, 동성연애자, 제3세계 착취 문제 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반대편에는 남자, 이성애자, 선진국들, 권력자들이 서 있다. 책에서 보듯이 폭력은 늘 약자를 향한다. 우리가 약한 존재를 감싸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샌드백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없다면? 다음은 우리 차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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