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 - 부동산에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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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이별까지 7일>은 시한부 어머니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배경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빚더미에 허덕대는 일본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에서 시한부 어머니와 아버지는 주택담보 대출을 갚아나가기 위해 사금융 등에 손을 대며 또 다른 빚을 지고, 빚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 한다. 노후 준비는 집 한 채가 전부이고, 수입은 경기침체로 인해 공장 직원들 월세를 주기에도 빠듯하다.


영화에서는 감당 못할 빚을 진 어머니 아버지가 무능하고 어리석게 비추어지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대도시에서 한 시간 남짓하는 근교에 있는 집을 대출을 끼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몇 년만 버티면 두세 배 뛴 집값이 그 모든 힘듦을 보상해줄 테니까. 이런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집에 목을 매던 수많은 사람들이 빚더미에 나앉게 되었고, 매물을 시장에 내놓아도 누구도 사지 않는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일본의 집값은 1990년 이전 가격의 절반을 밑돈다.


이러한 일본의 오늘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는 1990년대 이전의 일본 상황이 현재의 우리나라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미리 오를 집값을 기대하며 대출을 끼고 집을 구하는 현상, 노후준비는 가진 집 한 채가 전부인 5060세대들,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금리를 1퍼센트까지 낮추어주는 정부정책 등, 대한민국 정부의 부동산은 위태롭기만 하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의 현 상황을 점검해보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는 책을 한 권 살펴본다.



<어디 사세요?>는 부동산에 저당잡힌 한국사회의 집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0년 이명박정권 때에 씌어진 책이라 현재를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일부 보이나 부동산 문제는 박근혜정권에서 심화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대체로 아파트 공화국의 현실과 이에 따른 실失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나라 50년 토건공화국의 역사, 집이 사는(live) 공간이 아닌 투기꾼의 현장이 된 이유, 재개발 이후 공동체의 붕괴, 광고라는 자본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부동산 관련 기사들, 정치적 무관심을 이끄는 전월세 이주민들의 생활 등이 다양한 도표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특히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인 2년마다 떠돌아다니는 하층민들의 유목민 생활이 정치의 보수화를 불러 일으켜 현재 부동산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내용은 주목할 만한 요소다. 인터뷰이들은 "2년 뒤에 어디에서 살지 알 수 없는데  내 지역 정치인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잘못된 정치로 인해 자신의 주거권이 침해받는다는 인식이 없는 듯했다. 그들은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정치냐'라고 말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생활정치가 왜 중요한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책의 결론 부분에서는 독일과 일본의 마을재생 사례를 예로 드는데, 시민 하나하나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될 때 내 삶과 내 마을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시민들이 적극 나서 쟁취해야 할 권리이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정치인들이 시혜처럼 내려줄 만한 요소가 아니다.


누가 지도자로 선출되는지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우리는 "버스비가 얼마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70원"이라고 대답한 어느 정치인을 욕하지만, 사실 버스비가 얼마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서민을 위해 힘써달라고 뽑은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들이 뭉쳐 만들어낸 것이 서민을 몰아내 그 자리에 업자와 투기꾼들을 배불리게 하는 재개발과 토건공사다.


우리는 지금까지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마을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붕괴되는 수많은 재개발의 폐해를 목도해왔다. 마을이 파괴된 공간에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웃과 자연과 단절된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삶은 인간소외와 획일성, 성장과 부 중심주의라는 각종 단점을 불러왔다. 바로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애도보다는 집값 떨어질 걱정부터 하는 삶은 너무나 처연하다.


책에는 "정신이 도시 속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거꾸로 도시의 모습은 정신에 그 영향을 미친다"는 멈포드의 말이 언급된다. 지금까지 도시의 정신은 '성장'과 '효율성' '돈'과 같은 것들이었지만, 이제는 좀더 다양한 삶을 꿈꿀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디 사세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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