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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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은 생각의 통념을 깨부수는 망치 같은 사람이다. 글을 통해 그녀가 던지는 예상치 못한 관점과 뜨거운 문제제기는 늘 놀라움을 선사한다. 신작 <정희진처럼 읽기>가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판매를 시작했을 때 내용도 보지 않고 주저없이 책을 신청했던 이유는 이 책 역시 내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줄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내가 접한 정희진 선생의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이 첫 번째였다. 책을 읽은 후 '와, 이 여자 센데'라고 생각했다. 왜 여성학자(그녀는 이 단어에 동의하지 않는다)들을 '드세다'라고 말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책 속의 화자는 백인, 남성, 서울 등, 흔히 세상의 기준(이라고 일컫는 것들)을 향해 과감하게 짱돌을 던지는, 돈 키호테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여성이지만 표준어를 쓰고, 서울경기권에서 태어났고, 비장애인인, 나름대로 주류에 편입되어 살고 있기에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점,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관점에 깜짝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다음은 <페미니즘의 도전>에 나오는 대목 가운데 한 문단이다. 이러한 대목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것 같다.

 

"제주도 사람의 입장에서 남해南海는 틀린 말이다. 그들에게는 북해北海다. 왜 박완서는 '제3세계' 문학이고, 괴테는 '세계' 문학인가? '유색 인종'은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기준이 된다는 백인 우월주의의 표현이다. 왜 한국의 프로야구 최종 결선은 '코리안 시리즈'인데, 미국은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니라 '월드 시리즈'인가? 한국어나 영어에서 만남meet은 본다see는 것을 의미하는데(또 봐요) 이는 시각 장애인을 배제한 말이다. 남성에게 성교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

 

이처럼 책 속의 그녀는 백인사회, 서울사회, 남성사회, 한국사회, 비장애인 사회에 편입되지 않은 사람의 대변자였다.

 

그녀는 늘 글을 통해 자신이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며 억울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본인은 굉장히 우유부단하고 여린 감성의 소유자라고 항변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자기주장 강한 페미니스트라고 여기는 이유는 '사회 통념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느끼는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튀는 못은 정 맞는다, 라고 말하니까. 주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녀는 목 끝에 걸려 있는 생선가시일 것이다.

 

 

 

그런 그녀가 독서 에세이를 출간했다. 모난돌 정희진 선생의 독서 에세이라면 단순히 책소개로 끝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보통 책에 관한 책은, '유명한 사람은 어떤 책을 읽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재빨리 파악하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읽는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은 전자의 욕구는 충족할 수 있겠지만, 후자는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정희진처럼 읽기>는 소개하는 책을 읽고 싶게끔 만드는 책은 아니다. 독서 에세이지만 사실은 '내가 소개하는 이 책이 세상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 꼭지를 읽는다 해서 그 책이 어떤 책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소개하는 책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그냥 그 책을 직접 읽으라는 식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은 척하고 싶은 사람이 이 책을 손에 집어들었다면 인상을 찌푸리며 곧바로 내려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책은 독서 에세이가 아닌 정희진 선생의 사회 에세이라고 봐야 한다. 책에 관한 책이지만, 사회통념과 다른, 비주류의 입장에서 주류를 비판하는 그녀의 남다른 눈썰미가 읽힌다. 책 속에서 <세계사의 해체>를 설명하는 문장 가운데 "서양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세계를 말하는 방법"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주류를 중심에 놓지 않고 세상을 말하는 방법, 그것이 정희진식 책읽기 방식이다.

 

"어떤 시각으로 읽느냐가 읽는 내용을 결정한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권력, 언어, 지식, 고통, 관계, 몸)가 있지만, 소재별로 읽기보다는 관점을 중심으로 선택한다."

 

이 책은 우선 리스트부터 남다르다. 정희진 선생의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베스트셀러'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비주류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그녀의 관점이 드러난다.) <문장강화> <화> <태백산맥> 등 밀리언셀러들이 종종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낯선 책들이다. 분야도 광범위하다. 본인의 주 전공인 페미니즘 책부터 <빅이슈>와 같은 잡지, <군주론> <손자병법> <천자문> 같은 고전에 <손무덤> <전화> 같은 시까지, 분야를 막론한다.

 

흔히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통념이 있는데, 그녀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류의 입장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역, 주류 밖에 있는 관점을 공론화시키는 글. 그게 바로 정희진의 힘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양한 종류의 서평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써내려갈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노동하고 존재하고 일상을 사는 사람은 글을 쓰지 않거나,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쓰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그 반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서술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발견하는 것도,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도 어렵다."

 

내가 그녀의 글을 빠짐없이 읽으려 노력하는 이유다. 그녀는 "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적 흥분을 주는 책"을 독서하는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내게는 그녀의 책이 그러한 자극적인 '빨간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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