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사로 산다는 것 -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이계삼 해제 / 양철북 / 2011년 8월
평점 :
초등학교를 다닐 때 처음 들은 교련 수업을 기억한다. 선생님이 김일성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데,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사회주의는 만민이 평등하다고 말하는데 공산당은 인민보다 위에 있으면서 호위호식한다, 북한은 이사도
못하게 종이에 자신의 거주지를 다 적어 내야 한다, 등등의 말도 기억난다. 언젠가는 학교에서, 서해서 북한 배가 38선을 넘어와 총격을 벌였느니
어쩌니 하는 뉴스 속보를 틀어줬다. 나는 그 방송을 보며, 전쟁이 날까봐 무서워 울었다. 찌라시를 발견하면 학교로 가지고 오라며, 찌라시에 보통
어떤 글들이 씌어 있는지 알려주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 빨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때는 그저 북한 사람들은 전부 얼굴이
빨간색이라는 뜻인 줄 알았다. 몇년 뒤 교련 과목은 사라졌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은 오래 갔다. 북한 사람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음을
알려준 건 학교가 아니라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이었다. 내가 배운 교과서에 거짓이 들어갈 수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교등학교 사회 수업 생각도 난다. 학교에서는 님비현상, 핌비현상 두 가지만 가르쳐주었다. 선생은 님비현상, 핌비현상을 설명하면서
"나는 우리 집 앞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다고 하면 찬성할 거다. 국민 하나하나가 자신의 이익 때문에 찬성 또는 반대하면 나라에서 제대로 일을 못
한다"라는 말을 했다. 그때는 세상의 모든 시위가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건 줄 알았다. 교과서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산천을 보호하기
위해, 그냥 온전히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위험한 원전을 짓지 말고 자연을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담아주지 않았다. 세상에 자신의 이익이 아닌 다른 생명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도 있음을 나는 교과서가 아닌 지율스님의 단식농성과 밀양 송전탑
투쟁을 통해 알았다.
지금도 궁금하다. 교과서는 왜, 선생님은 왜 내게 세상의 일부만 가르쳤을까. 왜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을까.

<교사로 산다는 것>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어떻게 교과서가 보수화되는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사회의 불의를 방관하게 만드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교사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잘못된 교육에 대항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부제를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을 갖도록 해줘야 할 학교나 책이, 이미 정해진 결론 쪽으로 교묘하게 아이들을
유도했다는 건 불편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 논리적인 결론이라는 것이 거의 매번 미국인의 삶과는 다른 삶은 모두 실패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불편해진다."
책에 따르면 교과서는 책에 나온 삶 외의 다른 삶은 실패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로 열정을 차단하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는 데 집중한다. 아이들은 생각을 거세당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최상이며, 서로 극단으로 갔을 때는 '중도'나 '타협점을 찾자'는 말로 토론을 끝내도록 교육받는다. 이를 통해 '극단과 불복종은 나쁜
것'이라는 인상을 주입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파멸을 가져오는지. "잘
교육되고 적당히 길들여진 어른들"만 키워낸 교육과, 이러한 교육과정을 방관한 우리는 모두 공범자다.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세월호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일련의 기만적 과정이나 자기기만 행위에 당당하게 "안돼"라고 말하게끔 도와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어른의 몫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실천과 책임있는 행동이
절실하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교사가 자신의 견해를 직접 이야기하고 눈에 보이는 행위로 보여줄 때 어떤 책보다 학생의 기억에 영원히 남는 강렬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불공정한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장소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이다. 어떤 경우든 '더 큰 상황'을 조용히 인식하면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부터 실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꿈꿀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수단을 써가며 노력해야
한다."
누구는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예쁜 생각만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사회에 나가면 알아서 배울 텐데 지금부터 그러한 세상에
노출되게 만들어야 하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교 때 가만히 있는 것을 배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불의 앞에 저항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독일 공립학교에서 복종하는 것만을 배웠기에 "나는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라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아프지만 정면으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선물해야 하는 이유다. 책은 다음과 같은 시로 끝맺는다.
"아이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네
허위를 진실인양 말하는 것도 잘못이지
아이들에게 천국에 하느님이 계시고
이 세상이 잘 굴러간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야
아이들은 자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안다네. 아이들도 인간이거든
아이들에게 숱한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게
앞으로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분명히 보게 해줘야 하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장애와 난관에 대해 말해주게
마주치게 될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게
지옥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려주게
행복의 대가를 아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그냥 두면 반복되고 늘어나
나중에 우리 학생들은
우리가 용서했다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예브게니 옙투셴코, <거짓말>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교사가 자신의 견해를 직접 이야기하고 눈에 보이는 행위로 보여줄 때 어떤 책보다 학생의 기억에 영원히 남는 강렬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불공정한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장소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이다. 어떤 경우든 `더 큰 상황`을 조용히 인식하면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부터 실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꿈꿀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수단을 써가며 노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