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 김원일 소설전집 9
김원일 지음 / 강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갈>을 읽으며 <아리랑>과 <태백산맥>, <한강>을 한눈에 살펴보는 느낌을 받았다. 1세대인 할아버지 강치무는 1900년대 일제 강점기 때 하얼빈과 관동군731부대, 해방 전후의 밀양 역사를 담고 있어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2세대 아버지 강천동은 남한에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밑바닥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한강>과 그 이미지가 겹친다. 30권이 넘는 대작을 쓴 조정래의 소설을 보면서도 감탄했지만, 그 장중한 한국의 현대사를 한 권에 완벽하게 집약한 김원일의 소설 역시 찬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갈>의 주인공 강재필은 아버지의 광기와 어머니의 정신병, 불안정한 생활환경 아래 자라난, 어릴 때부터 온갖 정신병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감방에서만 7년을 복역한 그는 자신이 사회에 나와 '갱생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신병의 유전적 경로를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해 할아버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다. 그는 아버지를 건너뛰고,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할아버지의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는 아마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이 반영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백정으로 살아가던 광기 어린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부반응의 또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 강재필은 일면식도 없으나 '독립투사'라는 당당한 타이틀이 있으니, 자신의 피 속에도 그의 유전자가 흐른다면 자신의 삶도 갱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할아버지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밀양으로 내려간다. 

 

강재필은 강천동의 존재를 부정하고 강치무의 삶을 조명했지만, 이야기를 지켜보다보면 할아버지 강치무의 삶도, 아버지 강천동의 삶도 본인의 의지가 아닌 역사의 질곡 때문에 무너져간 인생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 둘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같은 종류 인간의 두 가지 버전으로 읽힌다. 할아버지는 독립투사였으나 일제군에 붙잡힌 뒤로는 생체실험을 하는 일제 복역소의 보초병으로 일한 뒤 해방 후 죽은 사람처럼 지내게 되고,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밀양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 위해 울산으로 넘어가지만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에 오른손이 잘려나간 뒤로 개백정으로 살아갔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까지 죽이게 된 그는 반송장처럼 어둠 속에 갇혀버린다. 강치무와 강천동 모두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지만 결국 자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구렁에 빠져 허우적대다 조용히 사그라진 운명이었다.

 

밑바닥 삶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아픈지 모르며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강재필은 이 두 삶을 비교, 기록하면서 점차 자신의 삶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는 그들의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어둠의 그림자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밑바닥 삶을 구원해주느 유일한 곳이 고향 밀양이다. 밀양은 3세대를 잇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밀양은 나라의 앞잡이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강재필의 할아버지 강치무를 숨겨주었고,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복역생활을한 뒤 반송장으로 나타난 아버지 강천동을 품어준다. 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강재필에게 치유의 장소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그 밀양에 아버지 강재필에게 버림받은 4세대 강종호를 만나게 함으로써 둘의 부자관계에 치유의 끈을 마련해준다. 나라가 버리고 세상에 짓밟혀도, 갖은 죄로 감방에 투옥되고 반병신이 되어도 고향은 과거를 묻지 않고 조용히 보듬어준다. 그래서 강치무와 강천동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을지언정 천수를 누린 이유였을 것이다.

 

강치무와 강천동을 도왔듯이, 밀양은 강재필 역시 구원해준다. 그는 할아버지를 복원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버지의 삶을 돌아본다. 비록 할아버지의 생을 다 정리하지 못했고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마치지 못했지만 세상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자는 용감하다. 강재필은 희망이 있으므로 용감했다. 그는  자신을 마비시키려는 전갈의 독과 같은 자들과 대면하며, 그는 빠져나갈 방도를 구상해내고, 결국 성공한다.

 

3세대의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보며 우리의 현대사가 얼마나 굴곡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온갖 무명씨들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역사가 모여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만들어냈다. 비록 무명씨들의 역사에는 밝은 부분보다 어두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삶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김원일은 이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정글같은 세상,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독으로 무장한 세상이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으므로 결코 그들 앞에 무너지지 말라고, 역사의 장난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만의 독을 지니고 있으라고 말이다. 그래서 소설 제목을 '전갈'로 지은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