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비상시대 -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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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발전은 석유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용 대비 에너지가 높은 석유의 발견은 인류의 폭발적인 팽창을 가져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간단한 수치로만 따져보아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1750년 영국에 산업혁명이 일어날 당시 세계의 인구는 약 8억 명이었다. 이는 인구의 성장추세로 보았을 대 약 0.1퍼센트씩 증가한 속도라고 한다. 그러다 석탄, 그 이후 석유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현재 우리는 60억 명의 인구를 넘어서고 있다. 몇백 배의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즉 석유에 기대 이러한 인구를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알다시피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데 있다. 재생 불가능한 석유의 총량은 인류가 이용하기 전에는 총 2조 배럴이 있었다고 한다. 헌데 지금은 그의 절반 정도인 1조 배럴을 이미 사용했으며, 나머지 것들도 바닥 깊이 있어 얻어내기 어렵거나, 불순물이 섞여 질이 나쁘거나, 반고체 및 고체 상태이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비용으로 질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석유를 매장하고 있는 나라들은 매장량을 대폭 늘려 이야기한다고 한다. 매장량이 많아야 많은 석유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석유는 고갈될 확률이 크다.

또 다른 문제는, 석유는 매장된 장소가 몇몇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석유 매장량의 60프로 이상은 중동에 묻혀 있다. 전 세계는 이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수시로 전쟁을 벌여왔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우리는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이루어지는 수많은 전쟁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전쟁이 형태만 바뀐 채 또다시 일어날 것임을,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살상이 한없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러한 전쟁은 석유가 고갈될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지금의 황금기가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책에 따르면 사우디 유전들은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있다. 이미 최대한의 노력으로 유전을 뽑아내고 있지만 생산량은 이전만 같지 않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지구에 있는 모든 석유를 전부 뽑아 사용한다고 해도 지금의 속도로는 37년이면 바닥을 나고 말 것이라 한다.

석유가 고갈되는 시대를 위해 각 나라에서 열심히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중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역시 낙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수소, 석탄, 태양광, 풍력, 원자력, 바이오매스, 메탄하이드레이트 등, 수많은 대체 에너지가 있으나 모두 석유보다 생산성이 지나치게 떨어지거나, 너무 위험하거나, 석유 시대를 기반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대다수다. 각 나라에서 하고 있는 대체에너지 개발이라는 각고의 노력이 사실은 지엽적인 것에 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장기 비상 시대>는 지금 우리의 석유가 어떻게 고갈되고 있으며, 석유로 이루어진 세계는 곧 끝날 환상이며, 우리는 석유가 고갈되고 난 뒤 벌어질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기비상시대는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다. 한두 세대로 끝날 수도 있고, 수천 년이 지나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값싼 석유가 없다면 지금의 모든 생산기반과 이동수단은 고철에 불과하게 된다. 현재의 생활을 유지한다면, 석유의 고갈은 곧 자멸이라는 등식밖에 성립할 수가 없다.

저자는 산업화된 식량생산을 버리고 교외시설 위주의 생활을 개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동차와 비행기에 의존하는 삶, 대도시와 전국 체인점에 의존하는 삶, 초고층건물에 의존하는 삶을 버리고 작은 도시로, 그리고 그러한 곳을 뒷받침해주는 주변에 농경지가 있는 곳으로 삶이 이동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석유 기반의 산업도 전부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생활필수품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쓰는 기술도 꼭 필요하다. 지금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는 시스템에서 과거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일한 농경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온갖 곳을 돌아다니는 생활을 버리고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이 펼쳐질 것이다.

난 지금의 인류가 당연하 현재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는 왠지 이 책이 말하는 장기비상시대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성장만을 위해 주변의 환경과 세상을 파괴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듯이 자원과 에너지를 써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무지와 이기심에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타의로 이루게 되다니, 멋지지 않은가. 그곳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를 짓고 있는 현재의 인간에게 꼭 필요한, 지상낙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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