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모든 상식적이지 않은 것에 ?”라는 질문을 더는 던지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세상물정을 통달한 어른이 되는 것일까. 이 책은 그것에 대해 묻는다 

 

어릴 때는 내 삶의 원칙과 배치되는 것,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 뒤 꼭 그렇게 해야 해? 왜 그래야 되는데?”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다보면 이해하지 못할 상황을 보더라도 이렇다 할 해답을 찾지 못하고 그게 말야, 원래 세상이 그래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의문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날이 온다. 그럴 때 누군가는 나도 이제 철이 들었나보다라고 체념하듯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의 상식에 반하는 것들을 수긍한다는 것이 한 번 눈을 감는 건 어렵지만 두 번 세 번째는 너무 쉽게 된다. 그렇게 한 가지 두 가지, 자신의 원칙을 버리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세상에 잘 수긍하는 착한 어른이 된다.

 

이런 세상물정을 아는 착한 어른은 주변에 너무나 많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나 역시 수많은 상황에서 매 순간 타협하며 살아간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그런 착한 어른을 바라보는 한 사회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상물정에 물든 인간군상을 살펴보자. 명품 또는 짝퉁을 사는 사람, 그러한 사람에게 부러움 또는 질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 신문을 펼치고 집값, 전세 값을 걱정하는 사람, 보험광고를 들으며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 중국집에서 모두가 짜장면을 시키는데 혼자 볶음밥을 시키겠단 사람에게 눈치를 보낸 적이 있는 사람, 우울할 때 쇼핑을 하며 위안을 받는 사람 등, 그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고가 사치품에 난데없이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고, 영어 논문은 한국어로 된 논문보다 우월하다 생각하고, 외국 학자는 모두 한국에 오면 석학 대접을 받는다. 그 석학 앞에서 졸지에 한국 학자들은 학생으로 변신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고, 원본을 찾아 아이들이 모두 떠난 아파트 단지에는 기러기 아빠만 가득한 스릴러 코미디가 반복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속에 타협하는 인간 군상 가운데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은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의 객관적인 시선은 우리가 타협을 선택하게끔 만드는 세상을 꼬집고, 그로 인해 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우리 앞에 세운다. 이 책은 아무리 닳고 닳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번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왜냐하면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타협할 만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가열차게 질문하고 분석하고 판단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대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세상에 물들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학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노명우 선생은 이런 세상에 탐정이 되어 의심이라는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으로 본인의 역할을 다한다 

사회학자는 탐정과 비슷하다. 그는 탐정처럼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흔적에 주목한다. 범인이 현장에 남긴 머리카락 한 올은 범인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사회학자는 유서에 담기지 않은 자살의 이유를 찾는 탐정이다. 탐정 사회학자는 고립된 사건을 일련의 사건으로 변형해서 보이지 않던 실마리를 찾아낸다.”

 

 모든 게 팔자소관이라면 사회과학이란 불필요하다. 하지만 사회과학자가 팔자타령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구질구질하니 더 이상 하지 마시오! 모든 문제는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오!’라고 야박하게 소리 지른다면, 그는 입 바른 소리를 한 대가로 언제든 팔자타령거리를 산처럼 쌓아놓고 있는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시민들로부터의 고립이 무서워 전 여러분의 편이랍니다. 전 여러분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라고 속삭이며 위안만 하며 불행의 사회적 원인을 가린다면 그 또한 직무유기다. 사회과학자는 팔자타령을 하는 사람을 야단치는 냉혹한 분석가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위로의 말을 늘어놓는 마취전문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는 사회를 철저히 분석해 우리 스스로 의심하는 힘, 타협에 굴하지 않는 자세, 자본과 소비시대에 이용당하지 않는 방법을 익히게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방법론으로 저자는 개인의 연대와 참여’, 그리고 사회의 복지를 말한다

군중을 폄하하지 않고 기다리면, 군중 속에서 공중이라는 꽃이 피는 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의 떼가 군중이어야만 이득을 얻는 패밀리는 공중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공중은 자신들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세력이지만, 군중은 자신들의 악행을 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중에서 공중이라는 꽃이 피는 순간을 기다리지 않고, 군중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 그는 마피아 집단의 비밀 멤버이거나 뼛속까지 엘리트주의자이다.”

 

개인적 성공은 소유한 승용차의 크기와 은행 잔고로 측정될 수 있겠지만, 사회의 성공 여부는 공감이 제도화된 복지의 크기와 넓이로 가늠할 수 있다. 하늘이 혹은 계급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만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동정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독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회가 홀로 성공하는 게 더 좋다. 복지국가는 성공한 소수의 개인보다는 성공한 사회가 공공선에 가깝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성공의 단위는 하늘이 돕는 개인뿐이라는 오래된 사유의 관습과 이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지국가와 만날 수 있다.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기계발서가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진 못한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는 읽을 만큼 읽었다. 이젠 그 책을 덮고 한번 물어보자. 이건희의 성공은 자기계발서 덕택인지, 아니면 이건희의 아버지가 이병철이었기 때문인지.”

 또한 저자는 이 야만적인 세계에 우리 이름 없는 무명씨들은 언제나 존재 파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경고한다. 내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모든 고통이 절대 나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자아로 뿌리를 단단하게 내려야 한다. 힐링의 대상은 결코 내가 아니라 사회라는 것.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세상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었던 하나의 통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