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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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분명 그렇게 배웠다.

 

막상 사회로 나오면 상황은 급변한다.
한 번 실수는 “일을 잘 못한다고 평가받는 것”(112쪽, <가만한 나날>)에서 더 나아가
인생의 낙오자로 낙인찍혀버린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배를 따를 수밖에 없는데,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너는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라고 가스라이팅 당해도,
선배의 말 한마디에 “연한 싹에 끓는 물이
한 바가지 끼얹어진 듯한”(142쪽, <드림팀>) 기분을 느낀다고 해도
모든 게 처음인 사회 초년생에게
믿을 구석은 그뿐이니,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소녀는 성장하게 마련이다.
소설 <가만한 나날>의 주인공들은
부조리에 합류하는 대신, 성장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청춘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기존 세대들이 만들어낸 부조리에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145쪽, <드림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선배들이 되뇌는 “한국사회가 그렇잖아”(150쪽, <드림팀>)라는 체념과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125쪽, <가만한 나날>)라는 무책임한 방관 앞에
적어도 자신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나름의 맹세를 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청춘이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은
의존적인 자신을 벗어던지고 혼자 성공했던 그 느낌으로 편안함을 깨닫고,(<얕은 잠>의 미려)
부조리에 합류했던 시절을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며, (<가만한 나날>의 나)
개선되지 않은 사과 앞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드림팀>, 선화)

대한민국 출생률이 최악이라고 한다.

 


청년들이 결혼을 거부하고, 돈 모을 생각은 안 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따위에 돈을 쓴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나는 이런 청년들을 향한 기성세대들의 우려를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부정되는 것에 화가 난 기성세대들의 울분이 보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부조리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거부하겠다, 는 청춘의 의지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연애-결혼-출산이라는 ‘정상적인 행복 루트’라는 레일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
출생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들이 만든 사회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고,
결혼에 대한 거부 역시 마찬가지다.
아파트 대신 지금 순간을 즐기겠다는 마음 또한
그들이 만들어낸 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일환이다.

 

기존 세대들이 아무리 눈을 가리고 입을 틀어막으려고 해도
소녀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이 소설은 더는 우리가 이전의 우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작은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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