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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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기완을 만났다

넷플릭스 영화 원작이라는 광고문구에 뭔가 빠른 전개를 기대하며 선택했는데 몇 번씩 숨을 고르며 읽는 것을 멈춰야 했다.

1990년대의 북한의 고난의행군때 중국으로 어머니와 같이 이탈한 로기완. 이니셜 L

벨기에 브뤼셀이라는 이국땅에 위조된 신분증 하나와 방수포에 싸진 약간의 돈만을 가지고 홀홀단신으로 떨구어진 L의 불안감, 공포는 상상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경찰이 가출한 청소년으로 오인되어 고아원에 맡겨지고 몇 명의 선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김작가 K가 방송 인터뷰이로 만나서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 17살 윤주의 상황이 악화되자 도피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어른처럼 말하고 주위를 살필 줄 아는 윤주가 오른쪽 혹이 자라 암으로 전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 우리 사회의 곳곳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 도저히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막막함에 휩싸이게 된다.

 

간암 말기 아내의 안락사를 도운, 의사 박. 영혼을 파괴해버리는 육신의 고통 앞에서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당위가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L이 어머니에 대해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책감과 사랑의 크기는 비례하는 것 같다.

 

이니셜 L로 시작한 이야기가 다시 김작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고대 신화에서 뱀의 머리가 꼬리를 무는 모양의 순환이 생각난다. K에게 L의 존재가 공감이 한 방향으로, 시혜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며 전생애가 연결되는 경험이 바로 삶의 이유가 된다. 남의 큰 상처보다 제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라고 흔히 말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피상적인 이야기인가? 두려움, 고통을 안본다고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굶주림이란 영상이나 문서에만 존재하는 현상이지 전혀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인가? 노숙자들과 무료식사를 위해 길게 줄 선 노인들을 외면한다면 그렇다.

이 책에 소재가 된 난민, 안락사 뿐만 아니라 각종 차별로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를 시작하는 것이 살아있는 존재의 할 일이 아닐까?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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