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법칙 -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
피에르 가니에르.카트린 플로이크 지음, 이종록 옮김, 서승호 감수 / 한길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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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는데,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가 만든 인육 요리에는 한니발 렉터의 잔혹성과 세상에 대한 조롱 있고,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에서 마스터가 만드는 요리에는 상처 받고 소외된 이를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는 위로와 존중이 있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 이야기에는 운명이 있는 것 같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인터뷰 마지막에서 자신의 요리 인생을 한 문장으로 결론지었다.


"제가 40년 이상 마음 속에 간직해왔고, 현재를 이해하게 해준다고 믿는 문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자신이 마음먹은 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명이 정해준 역할을 실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 얀 파토카 ] p337


피에르 가니에르는 요리사 아버지한테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장남이기 때문에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어릴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는데, 피에르 가니에르한테 요리는 운명이었다.


이를 테면,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산까지 애를 쓰며 뛰어가는 게 아니라 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산 안에서 애를 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산에서 나뭇꾼으로 살든 땅꾼으로 살든 그 역시 아버지한테 보고 배운 것이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 ‘인간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운명이 정해준 역할을 실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말을 40년 이상 마음 속에 간직했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피에르 가니에르가 요리를 할 때 직감에 의존한다고 말했을 때, 요리사로서 나에게는 주어진 운명이 있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매번 새롭게 노력한다는 이야기,요리사한테는 체력이 중요하므로 아무리 피곤해도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책을 즐겨 읽고 팀원들과 함께 전시회를 자주 간다는 이야기,팀원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요리는 셰프 한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 창조성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팀 전체에 달린 문제라는 이야기...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주어진 운명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은데, 피에르 가니에르는 운명을 기꺼이 즐기고 있고, 운명 속에서 세상에 최선의 것을 베풀고자 하니 이 사람은 정말 요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 페란 아드리아는 대단히 지적이고, 직관력도 있는 데다 창의력도 상당한 사람이죠. 그렇지만 저와는 극과 극이라고 해야할까요? 우리는 서로 양극에 서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하죠. 올리브가 주제인 요리를 예로 들어볼게요. 아마도 그는 올리브의 맛이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올리브로 만든 것이 아닌 요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출 거예요. 그가 추구하고 발전시킨 요리의 방식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요. 아드리아는 분명 화학 작용으로 만들어진 재료나 화학 기법을 통해 섬세한 맛이 느껴지는 올리브 요리를 만들겠지만, 저는 그와 완전히 정반대의 방식으로 실제 올리브를 매우 단순하게 조리해서 그 올리브의 맛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거죠. 제게는 그런 요리가 완성의 개념입니다. 오히려 올리브의 맛 외에 또 다른 어떤 맛을 내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저에게는 더 중요하죠. p233

* 요리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감동을 주며, 마음을 흔드는 요소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리고 제 내면에 저를 지배하는 어떤 정신적인 질서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도 느끼죠. p223

* 요리는 ‘다차원의 감각’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리는 귀, 입, 코, 눈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신까지 자극하고 감각을 전달하죠. 어떤 예술 장르도 이런 복합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p222

* 저는 셰프예요. 셰프는 리더라는 뜻이기도 하죠. 즉 제 뒤를 잇는 수많은 요리사들의 선두에 선다는 것을 감수해야 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물론 거창하게 젊은이들의 스승이 된다거나 멘토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아요. 그저 옆에서 그들이 배웠으면 하는 점들이나 삶의 원칙 같은 걸 알려주고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그들의 멘토가 될 만한 부분은 열정과 성실밖에는 없어요. 제 역할은 앞으로 함께 갈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젊음과 호기심이 저를 재촉하고 있기도 하고요. p268

* 요리는 셰프 한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 그리고 창조성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팀 전체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지금은 제 창조성을 내세워서 혼자 모든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를 팀에게 전달하고 함께 표현하고 검토하고 반복하면서 겸허한 마음가짐을 갖는 등 집단 가치에 매달리고 있죠. 절제(la frugalite)와 부드러움(la douceur) 그리고 다정함(la rendress) 이 제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들입니다. p330

* 빔 벤더스 감독은 "이미지를 통해 세상에 최선의 것을 주고자 했다." 고 말한 적이 있었죠. 저는 요리로써 세상에 최선의 것을 베풀고자 했어요. p276

* 프랑스 요리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근사한 접시에 소스로 줄을 그어 무늬를 내기 시작한 건 제가 처음이죠...(중략)... 그런데 사실 전 이 방식을 이제 더 이상 쓰지 않죠. 완전히 버렸어요. 다른 예를 들면 독특한 모양의 접시를 사용한 것도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메뉴에 대서양 게나 서대같이 재료의 이름을 제목을 단 것도 저희 레스토랑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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