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정치 - 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
서병훈 지음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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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훈은 <위대한 정치>에서 밀과 토크빌의 생애와 저작을 다루었는데 아쉬우면서 흥미로웠다. 아쉽다면 한국 지식인들을 더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흥미롭다고 하면 밀과 토크빌의 저작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5부로 구성된 책에서 ‘1부 삶-말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다’ 와 ‘5부 정치활동-행동하다’ 의 분량이 제일 많다. 1부와 5부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제일 많이 말하고 있고, 서병훈의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사회에 대한 빛의 무거움을 통감해야 마땅하다. 소리를 탐하면서 세상에 등을 돌리고 사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 참여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격이 모자라는 지식인의 섣부른 행동은 오히려 누가 될 뿐이다. 밀과 토크빌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자신의 글 속에 시대와 국가의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지식인이 자유인의 도리를 다하는 최선의 길인 듯하다. 또는 플라톤이 말했듯이, 그냥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도 큰 기여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교육과 연구’ 의 본분에만 충실해도 세상은 적잖이 달라질 것이다. p386


책 말미에 나온 이 얘기가 책을 관통한다. 서병훈은 한국 지식인 사회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밀과 토크빌을 기준으로 세워 이왕 한국 지식인들을 비판할 것이면 실명 비판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앨런 소칼이 <지적 사기>를 써서 과학적 개념을 오용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실명 비판했던 것이나 서강대 사회학과 김경만 교수가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을 써서 김경동, 한완상이 세계 학계의 흐름과 동떨어져 허구에 가까운 토착 이론을 추구한다고 실명 비판한 것처럼, 자격이 모자라는 한국 지식인들을 실명 비판했다면 논쟁이 촉발되며 학문적 성과가 일어났을 것이다.


또는 TV에 나와서 정치평론가입네 하며 언제는 박근혜를 찬양했다가 언제는 박근혜를 앞장 서서 비난하는 이들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탄핵과 구속이 끝이 아니다. 침묵하며 불의에 동조하고 국민을 호도했던 공무원들, 언론인들, 학자들. 정치인들. 가짜 지식인들. 부역자들을 청산해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끝이 난다.


한국 학계에서 실명비판을 잘 하지 않고, 한국 사회도 실명비판을 인신공격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가 있으니 비판이 곡해될까봐 우려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더 강하게 했다면 한국사회에 지적 정직성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텐데 아쉬웠다.


서병훈이 이 책을 회고록으로 써도 좋았을 것 같다. 서병훈은 밀과 토크빌을 오랫동안 연구했다고 했다. 심지어 무덤도 찾아가서 '동일시'를 느꼈다고 했다.(p23). ‘동일시’ 란 프로이트가 말한 ‘감정적 유대’의 다른 말이고, ‘감정적 유대’ 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교감하는 과정, 즉 남의 일이 내 일이 되고, 다른 사람의 삶이 내 삶과 겹치는 신비한 경험을 뜻한다고 각주를 달아 놓았다.


학자이면서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한 밀과 토크빌한테서 서병훈은 자신의 꿈과 과거,현재, 미래를 보았던 것 같다. 자기 얘기를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을 에둘러서 비판하지 말고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자신이 어떤 굴곡을 느꼈는지 썼다면 재밌었을 것 같다. 독자는 한국 학계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밀과 토크빌의 저작을 다시 읽고 싶다. 밀의 부인인 해리엇이 밀한테 끼친 영향을 읽으니 밀이 쓴 <여성의 종속>도 더 쉽게 다가왔고, 토크빌이 기독교적인 풍토에서 자랐고 파스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얘기를 읽으니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정치와 종교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밀의 주장

1)정치 참여가 사람들의 마음을 넓게 만들어 주고 지적 수준도 높여 준다.

2)남녀 사이의 차이는 교육, 환경 등 여건의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토크빌의 주장

1)공공선에 헌신하는 것이 위대한 정치의 제1 요건이다.

2)평등 사회의 가장 큰 고질인 물질적 개인주의를 정치 참여로 극복할 수 있다.

밀과 토크빌의 이 주장이 참 좋았다.


밀과 토크빌의 이 주장이 참 좋았다.


*밀은 참여가 두 차원에서 사람들의 정신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첫째, 참여는 사람들의 마음을 크고 넓게 만들어 준다. 둘째, 참여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도 높여준다. 흔히 보통 사람들의 참여를 억제해야 하는 이유로 그들의 낮은 지적 수준을 꼽는다. 그러나 밀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참여를 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여가 사람들의 지력을 높여 준다는 것이다.

* 밀은 <대의정부론>에서 어느 누구도 단지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되듯이 "우연히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평등한 보호와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세태는 "반反 이성, 벌거숭이 불의의 극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그들도 점차 정치를 배우고 개인적인 책임감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토크빌은 위대한 정치의 제1 요건으로 공공선에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
"일반 이익을 위해 사적 이해관계를 희생시키는 것이 고대 공화국을 움직인 기본 원리였다. 그래야만 ‘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사적 이익과 일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 밀은 진보를 제일 잘 촉진하는 정부가 "가장 좋고 가장 훌륭한 정부"라고 말한다. 진보란 무엇인가? 밀은 인간성 humanity 를 증진할 수 있을 때 진보가 일어난다고 했다. 어떤 형태의 정부가 "가장 이상적 ideally best" 라고 할 수 있을까? 밀은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첫째, 주권, 즉 최고 권력이 국가 권력에 귀속 되어야 한다. 둘째, 모든 시민이 가끔씩은 지방 또는 전국 차원에서 공공의 임무를 수행하며 정부의 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평등 사회에서 사람들은 남을 잘 인정하지 않는 만큼이나 자신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내기보다 남 뒤로 숨으려 한다. 다중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대신하려 한다. 그러나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사람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개개인이 일종의 자신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군중 속에 숨어 매몰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토크빌은 평등사회의 가장 큰 고질인 물질적 개인주의가 참여를 통해 극복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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