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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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는 친구 사이인 소녀 릴라와 엘레나 둘의 이야기이다. 유년시절부터 사춘기를 지난 때까지 둘이 성장하는 이 이야기 속에서 둘은 어찌나 친한지 고민거리가 있으면 같이 나누기도 하고 떨어져 있으면 편지를 보내 서로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때로는 상대한테 경쟁심을 느끼기도 하고 상대를 질투하기도 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나폴리4부작 중 제1권으로 엘레나 페란테의 자전 소설이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한길사에서 출간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도 자전 소설이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류의 소설을 낸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 하다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시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것, 작가의 사적인 경험에 독자의 사적인 경험이 공명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SNS에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단상으로 기록하고, SNS가 일기장인 것 마냥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요즘의 모습이므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자전 소설이 현 세태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테고, 작가와 비슷한 시기를 살고 있는 독자는 작가가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연애를 하고, 친구와 가족과 연인과 갈등하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독자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경제적인 문제로 릴라의 부모가 릴라의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릴라를 약혼시킨 대목에서, 사랑이 밥먹여 주냐. 있는 집안과 결혼해라. 우리 집이 너무 힘들다 하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 결혼했다가 곧 이혼을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놈의 돈이 뭔지. 하며 소주잔을 비우던 친구 옆에서 나는 친구가 한 잔 마실 때 속상해서 두 잔 마시고야 말았다.

 

엘레나가 좋아하는 남자의 아버지이자 시인인 도나토 아저씨가 엘레나한테 치근거리며 강제로 입을 맞추고, 엘레나가 도나토 아저씨한테 혐오를 느끼고 자신한테는 경멸을 느끼는 대목에선,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문단 내 성폭력, 글을 가르쳐 준다며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문인들이 생각났다. 새벽 3시에 xxx 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한다면서 피해자가 내게 페메를 보냈을 때 이 시간까지 안 자고 고민하고 있었구나, 오죽했으면 나한테도 보냈을까 싶어서 가엾었다.

 

자기를 얼마만큼 드러내느냐에 따라 소설에 '자전'소설, '사'소설 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모든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소설은 그 자체로 자전소설이다. 작가의 경험이 독자의 경험과 공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는데, 작가가 얼마나 진실되게 이야기 하느냐,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작가가 보여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는 괜찮은 소설이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세상에 둘도 없는 신발 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 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햄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라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체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p330

* 릴라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네겐 치근덕거릴 수도 있어. 그런 수작을 부리면 알려줘." 나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릴라를 바라보았다. 겨우 열세 살인 우리들은 제도나 법률이나 정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들은 것을 따라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원래 정의는 폭력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알프레도 아저씨가 돈 아킬레를 죽인 것도 그래서가 아닌가. 집으로 돌아와 릴라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릴라가 나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복해졌다. p152

* 집에서 도망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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