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개빈 지음, 김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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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의 일생을 다루는,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평전에서 마약에 대한 내용이 90% 넘게 나온다. 마약 구할 돈을 마련하려고 지인에게 애원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까지 했다는 이야기, 연주비와 앨범 판매대금을 마약 산다고 탕진했다는 이야기, 마약을 투약하느라 가정을 팽개친 이야기, 같이 투약한 동료를, 처벌을 피하려고 배신한 이야기, 마약을 투약하지 못해서 광기를 내보였다는 이야기, 하지만 다시 마약을 투약하자 활기를 얻어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 마약 투약을 못하게 말리는 아내를 때렸다는 이야기, 아내를 시켜 마약을 구해오게 했다는 이야기, 마약혐의로 감옥에 갔다가 나오고 정신병원에 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 재기하게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지만 믿음을 저버리고 마약을 또 투약했다는 이야기, 그는 마약을 끊지 않았다는 이야기, 결국 마약에 취한 채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이 인간은 왜 마약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나. 당시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마약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거나 다른 연주자들도 정도만 다를 뿐이지 쳇 베이커와 비슷했다고만 생각한다면 인간 쳇 베이커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쳇 베이커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마약을 하는 이유를 ‘마약의 힘을 빌려 천재가 되는 것 p502’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천재가 되려고 했는가 생각해 봐야 할 텐데 그에게는 인정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책에는 짧게 서술될 뿐이지만 쳇 베이커는 마일즈 데이비스를 따라 하는데 마일즈 데이비스한테 인정받지 못했다는 대목과 (유럽의 팬들은 쳇 베이커를 좋아해도 미국의 동료연주자들과 평론가들은 그 연주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아버지조차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대목을 보자 쳇 베이커가 마약에 빠졌던 것은 인정받고 싶어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을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처지도 인정받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니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 좌절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마약에 빠졌을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인정을 받으며 존재감을 확장하게 마련이다. 그 말을 달리하면 인정받음으로써 삶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되는데 인정을 늘 갈구해야 했으니 실상 그의 삶은 고립된 것이었으리라. 특히 그가 인기 많은 스타였기에 그 고립감은 무척 컸을 것이고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쳇 베이커는 이렇게 말을 했다.


“나는 한결 어두운 심성에서 연주하고 싶었다네. 그러다 보니 조성 체계에서 살짝 비켜 간 음을 사용하게 됐지. 기술적으로 음정이 플랫 flat 된 상태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밑에 드리운 소리를 내고 싶었다고나 할까.” p149


책을 덮고도 저 문장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트럼펫으로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입으로는 늘 거짓말과 욕설을 달고 살았다. 저 말은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가장 진실된 말 같았다.  쳇 베이커가 남긴 연주를 들었다. 결코 절창이라 할 수 없는, 풋내기 같은 목소리와, 감정을 자극하는 트럼펫 선율이 앨범을 채우고 있었다. 슬픔, 우울, 애처로움, 쓸쓸함, 상실감, 그리움, 불만, 분노, 불안, 비겁함, 이기심, 자기합리화, 기쁨, 즐거움이 뒤엉켜 있었다. 쳇 베이커가 말한, 밑에 드리운 소리와 어두운 심성이 이해가 되었다. 그가 여성 편력이 대단했던 것도 그가 기댈 여성, 그를 품어줄 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외롭다고 말하고 있었다. 쳇 베이커는 절제하지 않고 막 살아버린 게 아니라 잘 살아보려고 싸워 갔던 것 같다.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파괴하며. 곁에 있는 모두를 파괴하며. 어둡게. 어둡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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