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향기 - 싱그러움에 대한 우아한 욕망의 역사
알랭 코르뱅 지음, 이선민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코르뱅은 <풀의 향기>에서 잡초, 정원, 풀밭 등 풀과 관련한 감정의 역사를 조망한다. 풀을 대하는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변해 왔느냐 하는 것을 소설, 시 등 문학작품으로 두루 살피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감정 중에서 고통은 없다. 풀을 관리하는 고통, 지겨움을 언급한 문학작품이 없다는 건 과거에 풀은 괴로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풀냄새가 부르는 향수를 말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그 또한 풀에 대한 감정이 좋은 이유가 될 것이다. 현재 풀을 대하는 감정이 어떠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로 그의 이야기는 흘러간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하는 건 짧지만 그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현재는 과거 풀이 주던 기쁨을 잃어버렸고 앞으로는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풀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되는데, 나한테는 잔디밭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풀을 밟으면 안 된다. 하는 금지와, 군대에서 부대 정비를 하기 위해 제거해야 했던 귀찮은 노동으로 기억되고 있고, 외가집에서 주변의 풀을 뜯어 불었던 풀피리, 지금은 사라진 보라매 공원의 개구멍-그 개구멍으로 들어가 풀을 헤치며 열매를 따먹곤 했다.-로 대변되는 어린 시절의 향수로 남아 있다. 인적이 드물었던 로마 보르게세 공원, 핀초 언덕에서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으며 거닐 때 어떤 걱정도 피로도 느끼지 못했는데 이 또한 풀이 주는 기쁨일 것이다. 지금도 풀밭에 앉아 풀냄새 속에서 책을 읽거나 풀밭에 누워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은 늘 갖고 있다.

시대가 지나며 대상을 대하는 관점이 바뀌면 대상한테 느끼는 정서도 바뀌는 건 당연한데 지금 우리가 풀한테 느끼는 정서는 과거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 과거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을 우리는 잃어버렸다는 게 놀랍다. 옛사람들보다는 못해도 나는 조금은 그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풀을 밟고, 풀냄새에 취하고, 풀밭에서 누워 이야기를 하고, 풀피리를 불고, 풀을 베개 삼아 잠을 자고 사랑을 나누는 일. 도시에 살면서 풀과 멀어지게 되었기에 풀이 주는 감정이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