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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5
버나드 맬러머드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3월
평점 :
미국 사회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네가 성공하면 네 노동의 합당한 대가를 얻은 것이고 네가 실패하면 네가 잘못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사회에 깔려 있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공공부조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점원>의 배경이 되는 1900년대 초반에는 공공부조가 취약하다.
<점원>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식료품점 주변에 다른 식료품점이 생겨 경쟁을 하고, 부침을 겪는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는 가운데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이들의 범죄를 사회 문제로 볼 이유가 다분하다. 사회의 지지망이 갖춰졌다면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거나 범죄를 벗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식료품점 주인만은 범죄자를 품어주고, 범죄자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식료품점 주인은 서구사회가 유대인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고리대금업에 종사하여 금융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교활하다. 같은 것-과 반대된다. 그는 선량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손해 보며 살지만 그 때문인지 궁핍하다. 이런 성정이 그의 불행을 설명할 수 있는데 반대로 이 성정 때문에 범죄자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식료품점 주인이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의 관습을 엄격하게 준수하지는 않았다 해도 그는 참 유대인이다. 참 유대인은 육체의 할례를 행한 자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행한 사람이라는 성경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점원의 마지막 행동을 이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행위에 선행한 꿈을 보면 여전히 그는 딸한테 헛다리를 짚고 있지만 사회적 지지체계를 받지 못한, 즉 자라면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이가 유대인을 통해 그것을 경험하였으니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대학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이런 식이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궁핍하게 사는 남편에게 부인은 자기와 결혼해서 남편이 대학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슬퍼하고 남편은 딸이 대학교육을 받게 하려고 돈을 벌고, 점원은 짝사랑하는 여인이 대학교 교육을 받도록 애를 쓰고, 여인은 점원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교육은 현 상황을 벗어나게 하는 확실한 사다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공공부조가 취약한 당시이다 보니 교육이 복지라는 생각은 소설에 보이지 않는다. 소설의 인물들이 돈이 없어서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버나드 맬러머드의 <점원>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빼놓고 읽으면 안 될 것이다. 필립 로스의 말처럼 ‘버나드 맬러머드가 인간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명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작가’라면 그 바닥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공공부조가 취약한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