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야스미나 레자 지음, 이세진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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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미나 레자의 <세르주>는 ‘나’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나’는 자기중심적이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을 험하게 하는 형이 밉지만 측은하게 느끼기도 한다. 형은 아버지를 닮았는데, 무지막지한 아버지를 피해 도망갔던 형은 어느새 아버지처럼 되었다.


가족은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TV 드라마만 봐도 가족이 울고 웃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 장면이 없는 TV 드라마를 가져와 보라. TV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공감을 주어야 하기때문에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를 등장시킬 수 없다. TV 드라마에서 가족이 울고 웃는 이야기가 항상 나온다는 것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가족들끼리 울고 웃는다는 뜻이다. 지지고 볶고 다 그런 거지. 그게 가족이지. 정이지. 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게 가족이 문제라서 그런건가. 생각하면 의문이 든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사람한테 막 대하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손튼 와일더의 <우리 읍내>에 이런 대사가 나오듯이,


“산다는 게 그런 거였소. 무지의 구름 속을 헤매면서, 괜히 주위 사람들 감정이나 짓밟고, 마치 백만 년이나 살 듯 시간을 낭비하고, 늘 이기적인 정열에 사로잡히고...”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아닌가.


<세르주>에 죽음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280여쪽 되는 소설에서 죽음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이 재미있는데, 어머니의 죽음, 삼촌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 죽음에 임박한 형. 등이다. <세르주>에서 죽음은 이기적인 인간의 삶과 대비된다. 임종에 가까운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는 자녀, 아우슈비츠에서 무관심한 사람들, 삼촌에게 안정제를 먹인 부인의 행동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나는 반성한다. 돌아보고, 애틋해하고, 성찰한다. 소설을 끝내는 마지막 문장. 형이 진료실에 들어가자 “나나와 나 사이에 푸르스름한 구멍이 남았다.” p281 에서 애틋함은 진하게 남는다.


이 가족이 유대인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우슈비츠로 가족 여행을 간 에피소드가 길게 등장한다. 유대인에게 죄의식, 슬픔, 가족애는 뿌리깊게 자리잡은 감정이 아닐까 싶은데 그만큼 무관심과 이기심도 선명할 것이다. 유대인으로서 삶의 감정에서 인간으로서 삶의 감정으로 <세르주>가 나아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야스미나 레자는 정말 매력적인 작가인데 특히 대사가 기가 막힌다. 야스미나 레자가 희곡에서 출발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물들이 내뱉는 말에 생동감이 있어서 행위 주체의 모습이 눈앞에서 그려졌다. (내가 최고로 꼽는 그의 작품은 <아트>, <대학살의 신>, <장례식 후의 대화>같은 희곡이다...) 그가 육체의 형상을 정묘하게 묘사하고, 그 형상에서 도덕적 성질 일체를 나타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세르주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인물의 특성이 온전히 느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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