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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스토리 - 화장의 기나긴 역사
리사 엘드리지 지음, 솝희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화장에 대해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K-뷰티가 왜 인기가 있느냐. 전철에서 화장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것 등이다. K-뷰티의 꾸민 듯 안 꾸민 듯 한 화장이 중국,일본,동남아 여성들한테 인기라는데 그건 K-드라마와 K-팝 때문일 것이다. K-드라마가 재미있고 배우들이 이쁘고, K-팝이 멋지고 아이돌이 이쁘다고 생각하니 그들처럼 되고 싶어서 화장을 할 것이고, K-뷰티가 인기가 있는 것이다. 동남아 소녀들이 SNS에 한국 아이돌의 얼굴색을 톤 다운시켜 공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국 아이돌처럼 나도 하얗게 될래가 아니라, 한국 아이돌은 우리처럼 까무잡잡해. 라는 건데, 그건 동남아 소녀가 화장품을 살 경제력이 없고, 한국 아이돌처럼 보이게 화장을 할 기술과 시간이 없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돌 사진에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피부색을 어둡게하는 것은 손쉽게 한국 아이돌과 내가 동질감을 느끼는 방법이 될테니 말이다.
대중교통에서 누가 화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일부러 외면한다. 화장은 사적인 영역, 은밀한 영역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기자가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여자’라는 칼럼을 써서 지하철에서 화장이 추하다고 했다가 SNS에서 욕먹은 적이 있었다. 그를 향한 비판은 여자가 지하철에서 화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라는 것이었다. 여자한테 요구되는 게 많아서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지하철에서라도 화장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항변이 일리가 있다. 예뻐지고 싶어서 화장을 하는 사정도 있겠지만, 화장을 안 하고 출근을 했다간 게으르다거나 자기 관리를 못 한다는 평가를 받을테니 아무리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있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화장하는 여자를 보면 외면할지언정 비난하지 않는다.
<메이크업 스토리-화장의 기나긴 역사>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도 이것이었다. 화장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1)사회의 요구, 2)개인의 요구이다. 르네상스 시대 여성은 화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으며 따라야 할 규범만 존재했다고 한다. 미국 여성들이 여성 참정권 시위를 하며 당시 일반인들은 거의 바르지 않던 빨간색 립스틱을 입술에 발랐다는 것도 그러하다. 2차 세계대전 때 미용 광고들은 아름다워지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면서 여성들을 독려했다는데, 전쟁으로 현실이 암울할 때 긍정적이고 아름다우며 쾌활한 얼굴을 유지하는 것이 여성들의 애국적 의무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하철 화장도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지 말라는 사회의 요구, 지하철에서 화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라는 개인의 요구로 생각할 수 있다.
책은 화장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는 데 헐리우드 영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화장기술과 화장품은 배우의 단점을 가린 반면 장점은 부각시켜 배우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지금 K-팝 아이돌, K-드라마 배우의 화장이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팬들은 연예인을 동경해서 화장을 따라하고, 그들과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저렇게 예뻐질 수 있다. 나도 저렇게 예쁘다. 만족해한다.
책에 재밌는 대목이 많지만 몇 가지는 아쉽다. 제목은 <메이크업 스토리-화장의 기나긴 역사>지만 서구의 화장 역사가 책의 90%를 차지한다. 서구가 화장 산업을 발전시켰다고 해도 서구 중심의 역사가 전체 역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앞으로는 화장하는 남성이 늘어날텐데 남성 화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는 것도 아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