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을유세계문학전집 124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 지음, 홍진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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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 앞쪽에는 ‘탐미주의 소설’이라고 쓰여 있고, 띠지 뒤쪽에는 ‘유미주의적 삶은~’이라고 쓰여 있다. 탐미주의와 유미주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사상으로, 둘은 사실 같은 말이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에서 아름다움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말이 같다고 해도 탐미주의라는 말에서 더 강한 인상을 받곤 한다. 탐미라는 단어에선 탐닉이라는 단어가 연상이 되는데, 탐닉하여 현실을 도피하고, 탐닉하다가 붕괴되는, 부정적인 어감이 탐미라는 단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해서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의 소설에선 규범이 인간을 구속하고, 인간은 규범에서 벗어나 살려고 하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특히 규범에서 벗어나서 사랑을 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원래 사랑의 논리라는 게 맹목적이므로 이런 설정은 자연스럽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물들에게 죽음이라는 결말을 선물한다. 사랑은 왜 이뤄지지 못하고 실패하나. 사랑이 죽음이라는 결말로 끝난다는 것은 비극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게다가 죽음은 독자에게 사랑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장치라서 많은 영화와 소설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비극적인 정서로 선명하게, 인물들이 처한 한계와 의지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이 자연을 묘사하는 대목도 재밌는데, 자연 현상은 인물의 심리를 나타낸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물가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에드제와 페터가 물고기를 세고 있는 것을 보는 동안 나는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밤이 점차 밝아지고, 회색이 되어 투명해지고 시작하고, 사물들이 무채색으로 무미건조하게 서 있는 모습이 내게 한없이 거슬렸다.” p310, <무더운 날들>


그가 묘사하는 자연은 아름답기에 탐미주의를 신봉하는 인물의 심리를 자연 현상으로 투영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한편으론,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제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인간은 자연 현상 즉 자연의 본성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뜻 같기도 하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은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데, 인류가 만든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 라고. 소설의, 패배하는 사랑, 붕괴하는 인간한테서 애틋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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