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나간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사서 읽는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그러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밀이나 욕망처럼 마음 속 깊게 감춰진 것이 밖으로 새어 나와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사람의 관계가 낯설게 바뀌고, 내가 속한 세계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존재하는 것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절묘하게 포착한다고. 이를테면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에서 수녀들은 남자인 메리를 여자로 둔갑시켜 몰래 키웠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메리한테 수녀들은 은인이 될 수 없었다. 메리가 비밀을 알아채자 수녀와 수녀원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가 되었다.

강박을 표현하는 문장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평온한 세계를 어떤 생각이 지속적으로 침범하고, 불안과 두려움이 세계에 퍼져간다. 그것에 이끌려(또는 물리치려)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만 강박 속에서 합리적인 것은 사실 비합리적이다. 결국 파멸하고야 말 뿐이고 남는 것은 깊은 외로움이다. 일련의 과정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따라갈 때 기가 막힌다. 그래서일텐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을 보는 내 마음 한 쪽에서 측은한 구석을 발견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에선 마지막에 반전이 등장하고 놀라움을 주며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반전을 만들기 전 소설 초중반이 매우 정교하다. 말이 설득력이 있어야 나중에 그 말이 가짜라는 게 밝혀질 때 놀라움이 크다는 것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알고 있다. 인물과 상황을 설득력있게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가 강박에 이르는 인물의 심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이겠지만 에로티시즘을 다룰 때도 그는 감정에 주목한다. 에로티시즘은 육체와 마음 두 가지에 작용한다. 섹스가 몸의 언어이면서 마음의 언어이기 때문인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마음의 언어를 파고드는 것이다. 그가 마음의 언어를 행간에 숨겨 놓을 때가 많아 문장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을 품고 있다.

그러니 읽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신간 <레이디스>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샀다. 수록된 단편 모두 좋았지만 특히 <최고로 멋진 아침>, <모빌 항구에 배가 들어오면>, <공튀기기 세계챔피언>, <영웅>, <애프턴 부인, 그대의 푸루른 산비탈에 둘러싸여>, <하늘로 막 비상하려는 새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