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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8월
평점 :

초현실주의 화가 사전이라고 부르면 될까.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일대기를 4-5페이지 분량으로 모아 놓고 있다. 책을 처음부터 읽어도 좋고, 사전이 으레 그러하듯 발췌해서 봐도 무방한데 어떤 화가든지 두 가지 내용이 공통됐다.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감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을 그렸다는 것과, 초현실주의 그룹을 조직한 앙드레 브르통과 불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고 이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회에 회의를 안겨주었다. 그러자 화가들은 전통에서 벗어난 그림, 무의식에 기반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그림이 무슨 뜻이냐고 궁금해 했지만 그럴 때마다 화가들은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궁금함을 가지는 건 인간의 본성이니 화가들이 그렇게 답을 해도 사람들은 해석을 하려고 할 것이다. 해석을 하면 할수록 설득력 있게 보이는 답을 찾을 것이지만 어쩌면 그럴수록 화가의 의도에서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초현실주의 그림은 反이성, 反질서가 목적이니 거기서 이성적인 해석을 하고, 질서를 찾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니 말이다.
화가들의 매 이야기마다 앙드레 브르통이 등장했다. 그는 초현실주의 선언을 하여 초현실주의자 그룹을 만든 사람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불확실성은 화가들에게 불안을 주었을 것이고, 불안에 대처하려 화가들은 초현실주의 그룹으로 모였을 것이다. 하지만 브르통은 독선적이고, 편협하고, 질투심 강한 독재자였다. 화가들과 반목하는 일화가 골때리는데, 그룹 운영을 그렇게 했으니, 이야기마다 ‘브르통과 사이가 틀어져~’, ‘브로통과 거리를 뒀고’, ‘브르통과 철학적 견해차를 보였고’ 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해 보였다. 브르통과 같이 일을 했다면 나 또한 머리가 아팠을테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흥미롭다. 추진력이 있었지만 모순적이었고, 혜안이 있었지만 질투와 편협함에 혜안이 눈먼 사람. 질서에 저항하자면서 자기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독재자로 군림한 사람. 선동하고 음모를 꾸민 사람. 이 사람에 강하게 끌린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을 읽고, 오래 전 읽었던,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내가 다시 집어든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쟁이 만든 불안->초현실주의’ 라는 순서를 보니 현재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예술사조, 어떤 운동이 나올지 궁금하다. 현재의 불안을 반영할 예술사조는 무엇인지, 현재의 불안을 극복하려 예술가들이 어떤 운동을 할지 말이다. 동시대 예술에 자꾸만 관심이 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