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 - 종(種)의 최후 현대 예술의 거장
정준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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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평전에는 예술가가 남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지 쓰여 있지만 반대로 그 예술가의 사생활이 얼마나 존경스럽지 못한지도 쓰여 있다. 이건 예술가가 쓴 자서전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비난받기를 두려워하고, 욕망 앞에서 눈이 어두워지니 거짓말을 하고 과대포장하고 자신한테 불리한 사실은 침묵한다. 비겁해진다. 그 누구도 예외 없다. 평전은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파고 들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자서전에 비해서는 대상자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더 말한다. 다만 대상자의 이해관계인이 평전이 사실과 다르다며 항의를 할 수는 있으므로 평전 작가가 서술을 일부러 누락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 : 종의 최후>는 스트라빈스키의 사생활을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빈스키는 계산적이었고, 속임수를 썼고, 자기중심적이었고, 가정에서는 권위적이었으며 불륜을 저질렀다고. 니진스키가 스트라빈스키를 비난하는 글을 일기에 쓴 것도 그렇고 쇼스타코비치가 스트라빈스키에 실망한 것도 스트라빈스키의 사생활을 엿보는 단초가 된다. 스트라빈스키가 현재 한국에 살고 있다면 작품 활동을 못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예술가한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많은 비난이 일어날 것이다. 예술가의 작품이 존경스럽다고 사생활까지 존경스러워야 할 이유는 없는데 한국 사회는 왜 그렇게 예술가한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예술가의 작품에 집중하지 않고, 예술가의 사생활에 더 집중한다. 한국사회가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할 안목이 없기 때문인가? 또는 예술가의 사생활에 감정적으로 더 빠져들기 때문인가?


나는 누구나 범죄를 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반대로 누구라도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비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가의 사생활로 작품을 비난하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 그 말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제3자인 대중이 풍문만 가지고 과연 당사자의 삶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나.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생활이 존경스럽지 않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반성을 하면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스트라빈스키 : 종의 최후>에는 정준호가 인용한 책들과 정준호가 했던 여행과 정준호가 추천하는 스트라빈스키 작품 연주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정준호가 스트라빈스키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으리라 짐작하게 한다. 을유문화사에서 서평단을 모집하는 이벤트를 했을 때 신청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에는 예술가의 삶을 성실하게 복원하려는 노력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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